공부를 위한 최소한의 공부(05)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합시다."
당연하고 짧은, 그래서 조금은 허탈하고 소홀했던 이 한마디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흐름'이라는 공부의 거대한 줄기가 숨어 있습니다. 단순하게 교과서에 쓰인 예시나 설명, 자료와 문제를 달달 외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심리학에서는 교과서에 적혀 있는 내용을 '언어 지식'이라 부릅니다. 반면 글자나 그림의 형태로 나타낼 수는 없지만 이들을 배우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것을 '과정 지식'이라 부릅니다.
스마트폰 자판을 눌러 문자를 보낼 때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자판에 적힌 기호를 하나하나 떠올리지 않고도 자동적으로 손을 움직여 쓰죠. 종종 특정 기호의 위치를 떠올리려면 오히려 그 기호가 들어간 문장을 생각하며 손을 움직여 쓰는 시늉을 하면서 찾기도 합니다.
몸의 셀 수 없는 관절과 근육을 동시에 정해진 순서로 움직여야만 가능한 걸음걸이를 우리가 무심결에 해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과정 지식 덕분입니다.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의식하려 하다가는 도리어 넘어지기 쉽상이죠.
지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언어 지식과 과정 지식, 즉 내용과 흐름입니다. 흔히 '커리큘럼'이라 광고하는 수업 과정도 이 과정의 일면을 강조한 말입니다. 커리큘럼은 수업의 큰 흐름을 만들고 책과 선생님의 말 등이 흐름을 채웁니다. 언어와 과정을 둘 다 갖추며 온전한 지식이 형성됩니다.
사실 이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 진리가 다 그렇듯 우리는 이미 둘의 관계를 잘 알고 있습니다. 책으로만 배워서 수영을 할 수는 없고 듣고 읽지 않고서 무작정 성공하는 연애 또한 없죠. 운전, 요리, 운동. 분야와 중요함을 떠나 반드시 말과 행동이 함께 해야만 일은 이루어집니다. 말은 행동을 떠받치고 행동은 말을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허나 인간은 역시 모순적이기도 한 것인지, 공부에 있어서 배워가는 과정과 순서는 외면한 채 내용을 외우고 문제를 푸는 데 익숙해지는 것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문화가 단순히 '요즘 세대'에만 국한된 일도 아닙니다. 『장자』라는 오랜 책에는 이미 언어만을 중시하는 반쪽 공부를 풍자한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큰 나라의 왕이 하루는 대청마루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답니다. 그 근처를 지나던 수레바퀴 만드는 목수가 마루 아래에서 바퀴를 깎다가 망치와 끌을 내려놓더니 왕에게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왕이 "성인(聖人)의 말씀이다."고 답하니 목공은 다시 "그 성인은 살아계십니까?"하고 물었죠.
왕은 "이미 돌아가신 분이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목수가 왕에게 말하기를 "그렇다면 왕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糟粕)일 뿐이군요."라 하였답니다. 편안히 앉아 책을 읽어 좋아진 기분에 호의를 내서 목수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해 주었거니와, 찌꺼기 운운하는 답을 듣자 왕은 무척이나 화가 났습니다. 왕이 제대로 된 설명을 내어놓지 못하면 목숨을 빼앗겠다고 위협하자 목수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을 보건대, 수레바퀴를 깎을 때는 너무 느슨하면 헐거워 잘 맞지 않고 너무 급하게 깎으면 뻑뻑해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느슨하지도 급하지도 않게 하려면 손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묘한 경지는 입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제 자식에게 말로 전할 수 없고, 제 자식도 저에게서 배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70세가 되도록 늙어서도 홀로 바퀴를 깎고 있습니다. 성인도 전할 수 없는 것과 함께 죽었으니, 왕께서 읽으시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이 우화는 언어를 떠받치고 있는 과정과 흐름에 대한 무시를 비판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목수가 현명하고 왕은 어리석었다는 이분법적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내로라하는 선생들에게서 배웠을 왕이 어쩌다 '글공부'만 하게 되었을지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도 어쩌다 공부의 방법은 모르고 내용만을 외우고 풀었는지 돌아보아야 하죠. 그렇게 길고 길었던 12년의 학교 생활의 결과 내용과 문제 풀이는 모두 잊게 되고, 남는 건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지?"라는 허무한 물음뿐이니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다 우리는 공부의 과정을 알지도, 배우지도 못하게 되었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뇌과학에 비춰본 '의식적 노력'의 비밀과, 과정에 대해서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