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kg_교과서편 끝

공부를 위한 최소한의 공부(06)

by 김똑띠

인간의 뇌는 고작 2kg의 무게로 성인 남성 몸무게의 3%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크기답지 않게 무척 바쁘게 일합니다. 어찌나 바쁜지 하루에 소비하는 칼로리의 20% 이상을 뇌는 기본적으로 사용합니다. 심지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릴 때에도 말입니다. 꽤나 집중해서 활동하는 일을 할 때에는 23%~25%까지 에너지를 소비하기도 합니다.



뇌는 효율을 선택한다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을 해결해야 할 때에는 반드시 일의 효율을 극도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뇌도 그렇습니다. 뇌는 뉴런이라는 신경세포들이 시냅스라는 연결부를 통해 복잡하게 얽힌 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백 개의 복잡한 전선이 이리저리 얽히고 연결되어 작동하는 거대한 컴퓨터처럼 말입니다.


다만 컴퓨터는 전력을 더 끌어오고 설비를 증강해서 용량과 성능을 개선할 수 있지만, 뇌는 그러기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음식을 무한정 섭취하고 소화하는 데 무리도 따르거니와 머리 크기를 계속해서 키워갈 수는 없으니까요.


대신 뇌는 매일 매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새로운 자극과 경험, 기억, 감정 등을 처리하기 위해서 뉴런과 시냅스의 사용을 유연하게 하기로 합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은 배선을 잘라내서 정리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자주 사용하거나 중요하게 쓰이는 배선은 잘라낸 배선을 이용해 보강하고 더욱 촘촘한 네트워크로 만듭니다.


바이올린 연주가는 왼손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크고 복잡하게 발달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새로운 물건을 들이기 위해서는 오랜 물건을 내어놓듯, 뇌에 들어온 새로운 기억은 오랜 기억의 망각과 대체됩니다. 자주 사용하고 중요한 연결은 더욱 강화하고 그렇지 않은 연결은 도태시키는, 뇌는 그야말로 '적자생존'의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전은 실전이다


뇌가 새로운 기억과 오래된 기억을 처리하는 방법을 통해서 우리는 뇌를 단련하는, 즉 공부를 잘하기 위한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 수 있습니다. 뇌는 반복이 아니라 '중요한 반복'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매일 지나치는 가게 간판의 전화번호는 못 외워도 시험에 나올 단어는 몇 번 만에 외웠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중요하다고 자각하는, 다시 말해 의식적인 반복에 한해서 뇌는 강화와 유지를 선택합니다.


매해 수능을 앞둔 학생들 중에 상당수는 '실전'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경찰학교나 사관학교 시험을 응시합니다. 매번 모의고사를 치르는 익숙한 장소와 친구들을 벗어나서, 색다른 학교(수험장)에서 불특정한 수험생들과 시험을 겨뤄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실전'이라 이름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저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 효과는 정말 미미합니다. 입시 결과에서 탁월하다는 성과를 낸 학생 중에서 경찰학교, 사관학교 시험을 응시한 학생은 드뭅니다.


A는 A라는 자명한 명제처럼 실전은 실전입니다. 수능 당일의 차가운 공기와 싸늘함, 며칠 전부터 이어진 응원과 소란에서 따라오는 긴장감, 쉴 틈 없이 나오는 안내방송의 소란과 평소 모의고사와는 다소 다른 진행 방식의 생소함. 손에 쥔 수능 샤프의 낯설음과 공기 중에 은근히 스며든 점심 도시락 냄새. 오늘로써 그간의 공부가 끝난다는, 혹은 그래야만 한다는 날선 감각. 이 모든 것의 칵테일.


이 중에 대체 무엇을 '실전'이라는 두 글자에 담아낼 것이며, 실전을 아직 겪지 못한 고3 학생들은 당최 무엇을 자각할지는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을까요? 의식적인 경험이 기억에 남는 법이거늘. '실전'이라는 모호한 분위기에 올라타 의식 없는 시험 응시를 하니 효과가 없을 수밖에요. 공연히 시험의 경쟁률을 높이고, 국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험의 운영비를 늘리게 될 뿐입니다. 진심으로 국가에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추고 도전하는 학생들의 기회 박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자각된 반복이 결과를 바꾼다


인풋(Input)이 곧 아웃풋(Output)입니다. 수영을 하려면 해엄을 쳐야 하고 운전을 하려면 차를 몰아봐야 합니다. 물에 오래 있는다고 수영이 되지 않고 차를 오래 탔다고 하여 운전을 할 수는 없습니다. 물에 대한 공포를 줄이고 운전에 대한 감은 높일 수 있겠지만요.


수영과 운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교실에 앉아있었다 하여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자각된 반복. 의식적인 연습이 곧 결과를 바꿉니다. 같은 수업에 들어가서도 누구는 보고만 있고, 누구는 문제 풀이를 알기만 바라며, 누구는 문제를 어떻게 풀게 되는가 알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보려느냐에 따라 무엇이 보이는가가 결정됩니다.


마치 국어시간에 문학 작품을 배우며 종종 연습하는 "OO의 시점에서 생각해 보기"와 같습니다. 주인공의 시선을 중심으로 따라가는 보통의 흐름과 다르게, 조연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다시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처음 읽던 때와는 분명히 다른 관점, 시선이라는 것이 생겨 작품이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유튜브에서는 이런 시선의 전환을 영화나 드라마에 녹여낸 "말포이의 시점에서 다시 보기"와 같은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공부도 별다를 것 없는 뇌의 작동일 뿐이라서, 1만 시간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수업과 문제집을 오며가며 했어도 과정과 흐름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앤더스 에릭슨은 한 사람이 전문가가 되는 데는 1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한 가지 단서를 붙였습니다. 1만 시간은 반드시 의도된 연습 시간이어야 한다고요. 연습하지 않은 것을 잘할 수는 없으니까요.



선생의 책임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저를 포함해 많은 선생, 스승의 탓이 크다고 솔직히 고백해야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공부의 흐름에 주목하지 못(혹은 안) 했다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이 흐름을 주목하도록 이끌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니까요.


실제로 공부를 했던 환경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일명 '잠수부 실험'이라고 합니다. 두 그룹의 잠수부를 시켜 물속에서 특정 내용을 암기하여 밖으로 나오게 한 후, 한 그룹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고 한 그룹은 밖에 남아서 암기 내용을 테스트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물속에 다시 들어간 그룹이 15% 정도 많은 내용을 기억했다고 합니다.


입시 중심의 문화를 탓하든, 성적이라는 객관적 지표의 중요성을 탓하든, 경쟁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탓하든. 공부의 과정을 학생이 자각하도록 충분히 지속적으로 강조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공부해온 학생들이 자라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문제 풀이 실력만을 공부로 치는 문화를 공고히 한 데에 아주 큰 역할을 하였음도 사실입니다.


흔히 말하는 '풀어 제끼'는 문제 풀이나 '감상하며' 보는 인강, '탑승하는' 수업, '흐름 없는' 공부로는 12년 동안 수없이 많은 밤하늘을 바쳤어도 결국 새롭게 시작하는 앞에서 방법을 몰라 멍해지는 자신만을 발견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글이라는 찌꺼기만 공부로 친 셈입니다. 결과적으로 "공부를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그다지 낯설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물며 우리에게는 학교 밖에서 살아갈 날들이 훨씬 오래도록 남았으니,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공부할지 모를 막막한 이들을 위해. 어떻게 공부할지 이제는 아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 말입니다.



교과서편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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