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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Mar 25. 2022

승마와 채식의 상관관계


승마를 시작하고 내 일상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운동은 아침 공복에 해야 한다는 이상한 고집이 있는 나는 승마도 주말(을 포함해 모든 빨간날) 아침 8시, 승마장의 일과가 시작되는 첫 타임을 선호했다. 아침 8시까지 승마장에 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7시에는 일어나야 하고, 그러려면 전날 일찍 자야 한다. 과음도 금물. 숙취가 있는 상태로 출근은 할 수 있어도 말을 타는건 좀 무리였다. 술을 좋아하고 술로 일주일 간의 스트레스를 푸는 나로서는 휴일 전날 맨 정신으로(?) 일찍 잠들기로 한 것이 보통 큰 결심이 아니었다.


또 다른 변화는 고기 먹는 양이 급격히 줄었다는 거다. 굳이 세상 사람을 고기파와 해물파로 나누자면 나는 원래도 해물파에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주는 고기를 마다하진 않았었고 가끔은 해물 대신 고기를 선택하기도 했다. 고기 먹을 땐 아채도 밥도 제쳐두고 오로지 고기만 먹는 진정한 육식인이었다. 쌈장조차도 고기 맛을 해친다며 소금만을 고집했다. 그런데 어쩐지 승마를 하고 나서부터 고기가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이참에 아예 고기를 끊어볼까란 생각까지도 하게 됐다.




"승마하는거랑 비건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비건라이프'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을 때 받은 질문이다. 승마체험을 하고 미술관에서 생태예술 전시를 본 후 강남의 어느 비건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일정이었다. 왜 이렇게 짰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동물권과 기후위기에 대해 생각해보는 하루'란 부제를 덧붙였지만 그 의미를 심각하게 곱씹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 했다.


그래도 프로그램은 성황리에 끝났다. 주로 동물을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승마'라는 흔하지 않은 운동종목에 대한 관심도 있었을 것이고, 미술관과 강남 레스토랑이란 구성도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그것들을 하나로 엮는 '비건'이란 테마는 그저 요즘 트렌드라서 적당히 붙인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지금 비건이 유행 중이다. 채식은 스님들이나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나라에서 언제부턴가 비건 제품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고기의 모양과 향을 흉내냈지만 어딘가 어설픈 대체육들, 겉모양은 보통의 케이크와 다름없는 비건 빵류, 왜 비건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각종 '비건'용품들. 대체육을 한번 맛보고 싶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파는 데가 없어 버거킹에서 임파서블 버거를 사먹어보는게 뉴욕여행의 투두리스트(to-do list)였던 2019년에 비하면, 지금 한국은 비건의 천국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실제로 채식주의자가 늘어난 것일까하면 그것 역시 물음표다. 우리나라에서 비건은 한철 반짝하는 유행이자, 신기한 체험같은 것에 가까운 것 같다. 솔직히 채식을 왜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프로그램 제목을 지어야 하니 관심을 끌 수 있고 핫한 이름이 필요해서 요즘 유행하는 '비건'이란 단어를 선택한 것이었지만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비건을 포함한 채식주의는 동물복지와 환경보호를 위한다. 동물복지는 그렇다치고 환경보호와 무슨 상관인지는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축산업과 낙농업은 환경오염을 많이 시키기로 유명하다. '햄버거 커넥션'이란 개념을 참고해보시길. 그러니 동물과 함께 하는 스포츠를 체험하고 지구 생태계를 주제로 하는 미술전시를 보는 프로그램의 제목으로 '비건'은 딱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비건 레스토랑 식사 코스를 더하면, 대중성(?)까지 갖춘 완벽한 프로그램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고급 비건 레스토랑에서 와인과 디저트까지 풀코스로 즐기며 연신 맛 평가를 내리던 Z세대 대학생들은 '이번 한번으로 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비건 체험의 하루가 저물었다.




내가 승마를 시작하고 고기를 거의 먹지 않게 된 것은, 매주 동물들을, 강아지나 고양이 같이 '반려'하는 동물이 아니라 보통 '사육'의 대상으로 그려지던 말들을 만나고 교감하다보니, 고기가 그냥 고기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리된 것은 좀 괜찮은데 정육되어 있는 날고기를 보면 내가 주말마다 만나는 승마장의 말들이 떠올랐다. 둔하고 애교많은 제국이, 카리스마 넘치는 해피(강아지 아닙니다), 앞머리가 매력적인 애플, 착한 모범생 샛별이 ... 당연한 얘기지만 말마다 외모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 이 아이들도 엄연한 하나의 생명체이자 마격체(?)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니, 고기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수 밖에.


"평소에 말고기를 먹었었단 말이야?"


승마장 말들이 생각나서 고기를 못 먹겠다고 하니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 말은 비록 그게 말고기가 아니어도, 이 고기가 원래 어떤 생물이었는지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됐다는 뜻이다. 솔직히 내가 좀 유별난 것 같긴 하다. 그렇게 치면 승마장 교관님들이나 동물원에서 일하시는 사육사 분들은 죄다 채식주의여야 하지만 그렇진 않으니까 말이다.


우리나라는 고기를 안/못 먹는다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해산물을 잘 못먹는다고 하면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만큼 해산물은 '잘 못 먹을 수도 있는' 음식이기도 한 것이다. 비린내도 한몫을 하겠지만, 해산물이 고기보다 진입장벽이 높은 이유는 요리를 해도 원형(?)이 살아 있기 때문인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신 생선살을 찹찹 다져서 원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만든 '어묵'은 남녀노소가 좋아하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대표 간식이자 안주 아닌가. 우리가 고기를 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것은 그 고기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주 오래 전, 이런 방송을 본 적이 있다. 어느 가족이 농가와 계약을 맺고 거기서 사육되는 소 한마리를 분양(?) 비슷하게 받은 후, 가끔 가서 먹이도 주고 쓰담쓰담도 해주며 키우는 내용이었다. 주말농장의 동물 버전인 것이다. 충격적인 부분은 주말농장에서 각종 채소와 과일을 키워 그것을 수확해 먹듯이,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소가 어느날 도축돼 고기덩어리가 되어 그 가족에게 배달이 된다... 주인공 가족들은 이 주말농장 프로그램을 이용하고서부터 고기 먹는 양이 줄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때는 잘 이해가 안됐었는데, 지금 내가 고기를 맘편히 먹을 수가 없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들에게 진짜 고기와 완전히 똑같은 가짜 고기가 나온다면 진짜 고기를 포기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해봤었는데,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진짜 고기를 선택하겠다고 대답했다. 그건 아마 진짜 고기가 생산되는 과정보다 가짜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짜 고기가 원래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하고, 또 그닥 알고 싶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고.


아무리 동물 사육환경의 열악한 실태를 보여주고 축산업과 낙농업이 환경에 얼마나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해도, 미안하지만 (기름이 줄줄 흐르는 고기를 사랑하는) 보통 사람들에겐 잘 와닿지 않는 이야기다. 고기에 진심이었던 내가 고기를 끊겠다고 생각하게 된 데는 승마라는 특별한 계기가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나의 최애 안주였던 육회를 안 먹은지가 다섯 달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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