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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개비 Dec 27. 2021

인생 2

필연에 관한 소고

한동안 쓰지 않던 브런치를 어제 다시 연 것은 인연을 맺어주신 고마운 분들께 송년인사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하필이면, 그것이 죽은 자와 산 자의 시간에 관한 소고였다니......


우연을 가장한 필연


친구의 일상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는 일요일이었다. 아침 일찍 아내와 미사를 드리며, 교우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사실, 결혼 전이나 후에도 변함없이 난봉꾼이기도 했고, 주태백이기도 했던 친구가 세례 신자가 된 건 뜻밖의 일이었다.  어느 체육 교사가 금품을 노리고 자신의 제자를 유괴, 살해한 사건을 접한 뒤에 친구는 "그 아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다.

그렇게 영적인 부름을 받아 방탕을 끝낸 친구는, 아내를 따라 이내 독실한 카톨리언이 되었다. 성당의 친목회에서 주요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 아내의 성격으로 인해, 친구의 일요일 나기는 땀 내 풀풀 풍기는 운동도 아니고 질펀한 술자리도 아니었다.

어제도 예외 없이 경건한 오후가 끝나고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따뜻한 식사를 나누었다. 가족들이 거실에서 TV를 볼 때 친구는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나는 그 시간에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방에서 평소와는 다른 작은 소리가 들렸으나, 가족들은 친구가 옷장에서 옷을 찾는 것인가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 아내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방문을 열었다.

가슴을 움켜 쥔 친구는 이미 움직임이 없었다.

가족들이 심폐소생술을 하는 동안 119가 왔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하필이면, 내가 "어제 죽은 자의 시간이 0"이라고 시간 즈음에...... 친구는 절명했다.

이제 겨우 지천명의 중반인데 말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그랬다.

친구가 나로 하여금 자신과 나의 시간을 비교, 계산하게 하였던 것일까.


우연을 가장한 필연


성탄절과 이어지는 경건한 일요일을 보냈으니 친구는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랐으리라.


친구야!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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