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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개비 Sep 18. 2022

메밀꽃 필 무렵

훈남들의 꽃

메밀꽃 필 무렵... 훈남들의 꽃


메밀꽃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강원도 평창군의 봉평과 이효석 님의 단편소설인 "메밀꽃 필 무렵"이 떠오른다.  년 이맘때쯤 되어 개최되는 <효석문화제><메밀꽃 축제>를 통해서 좀 더 봉평의 가을심취할 수 있으련만, 코로나와 집중 호우로  인한 낙화로 인해 결국 2022 해의 행사도 취소가 되었다.


남쪽 동네에 사는 필자에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삶터와 그리 멀지 않은 울주군의 영남알프스 가지산 자락에서 8000평에 이르는 메밀밭을 만나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부산, 울산 근교의 주민들께서는 태풍 힌남노의 구박을 이겨내고 만개를 준비하는 엄청난 생명력을 맞이 하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직접 보실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메밀은 척박한 땅과 물이 귀한 곳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구황작물로 쓰임이 높아 흔히 접할 수 있는 식재료이고, 주변에서 차, 국수면, 전병, 묵 등등 다양한 형태로 흔히 맛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메밀꽃 꽃밭을 보신 분은 많지 않으시리라 생각된다. 대부분 척박한 오지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메밀밭을 떠올리면
당장 두 명의 훈남과 소설 한 편을
떠올리게 된다.


전라북도 고창 학원농장의 메밀밭에서 시공을 초월하던 도깨비로 열연했던 훈남 배우 "공유"

그는 도깨비 신부 지은탁에게 새하얀 메밀밭을 하얀 들이 내려앉은 곳이라 소개했다. 약간의 CG가 더해지니 드넓은 농장이 별밭인지, 눈밭인지, 혹은 소금밭인지 제대로 구분이 안되었다.


그리고, 또 한 명 한국문학사가 꼭 떠올려야 할 훈남이 있다. 국어 시간에 열심히 배웠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저자이신 이효석 소설가이다.

작가의 소년 시절 사진을 보면 메밀이 피부 미용에 좋다는 얘기가 결코 허투루 생긴 말은 아니지 싶다.


"메밀" 하면, 전병과 국수, 묵도 빠뜨릴 수는 없지만, <메밀꽃 필 무렵(이효석 지음 1936년)>이라는 단편 소설은 도무지 떠올리지 않을래야 안 떠올릴 수가 없다.

아시다시피, 이 소설은 강원도 산촌과 시골 마을의 풍경, 주변 전통 장터의 모습, 그리고 오일장을 돌며 정처 없이 바람 부는 대로 살아가는 장돌뱅이들의 삶을 담아냈다. 

오일장을 돌아다니는 얼금뱅이 "허생원"이라는 장돌뱅이가, 봉평장이 끝나고 다음날 장이 서는 대화장까지의 70리(약 28Km) 밤길을 걸으며, "조선달"이라는 동행의 장돌뱅이에게 자신의 꿈결과도 같았던 젊은 시절 하룻밤 뜨거웠던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봉평과 대화 간의 거리는 요즘이야 자동차 도로가 잘 포장되어 불과 25분 정도인 17Km에 불과하지만, 그 소설의 배경이 될 시절에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70리(28Km) 되는, 밤새 걸어야만 하는 길이었다고 한다.

산고개를 넘기도 하고 개울을 건너기도 하며 밤새 걸어야만 하는 멀고도 먼 길이었는데, 이효석 소설가는 그 여름밤에 그들이 걸었던 고된 길을 마치 독자들이 함께 걷고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어느 산등성이의 메밀꽃이 피어 있는 풍경을 참으로 아름답게 그려내었다.


여러분들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국어 선생님께서는 그 시공간의 간결하며 절절한 주위 묘사를 "한국 소설 최고의 백미"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시큰둥 했었는데, 그 깊은 가르침이 무슨 뜻이었는지 요즘에야 오롯이 느껴진다.

효석문학관 전시물

“이 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달은 부드러운 빛을 흔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70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


소설가의 묘사 이후로 어떤 이는 하얀 메밀밭을 소금을 뿌린 듯하다고 얘기하고, 또 어떤 이는 팝콘이 톡톡 터져 있다고 다. 여하한, 이 구절을 떠올리며 눈을  감으면 달빛이 교교히 내려앉은 산등성이의 메밀밭이 눈부시게 반짝인다.

영남알프스 가지산 산허리에 처음 열린 하이얀 소금밭을 걸을 때, 행여 운이 좋으면 공유나 김고은을 능가하는 훈남훈녀들이 불쑥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바야흐로 가을,

괴질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조심조심해서라도 겨우 즐길 수 있게 된 가을이다.

바야흐로 메밀꽃 필 무렵,

흐뭇한 달빛이 내려앉은 하이얀 소금밭에서

우리들의 젊은 날 훅 지나가버린 사랑을 추억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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