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을 하루 같이아니, 삼십여 년의 매일을 처음인 양 자신의 꿈을 위해 매진하는 한 사내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이 끈기 넘치는 사내의 이야기는 <100회 특집>이라는 제목으로 필자가 이전에 기고한 바 있다).
잉크의 냄새가 잊힌 지 오래인 요즘인데 불구하고, 책 읽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것이라는 믿음, 더군다나 그 위대한 신념이 땀내와 화약 내로 찌든 대한민국 제1훈련소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대한민국 군사박물관의 한 역사로 기록될 만큼 소중한 일이다.
한 때, 필자는 그 사내의 위업을 칭송하자면 얼마만큼의 페이지를 할애해야 충분할지 생각했다. <세미책(세상의 미래를 바꿀 책 읽기)>이라는 신념 하에 그가 써 내려간 글모음이 해발 2,744m의 백두산 높이를능가하였으니, 그를 칭송하는 글은 아무리 적어도 2,744페이지는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시인은 겨우 "큰 바보" 석 자로 그 사내를 정의한다.
사실, 이 시에서 독자가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큰바보"가 아니라 "큰 바보"라는 한 칸의 여백을 만들어 놓은 시인의 노림수이다.
단 한 칸의 여백은 "most imbecile"를
"greatness spirit"로 바꾸는 마법을 발휘했다.
이러한 여백의 마법은 두 번째 문단, "제 목 마른 지 모르고"에서도 나타난다. 한 칸의 여백이 없었더라면 단순한 "갈증"으로 그쳤을 육체적 결핍을, 영혼의 "갈구"라는 간절함으로 완성해 냈다.
오늘 시인이 적은'푸른 편지'를 접하며, 장황한 사설을 통해 휴머니스트 군인작가를 그려 내고자 했던 필자가 부끄러워졌다. 액션 영화 <존윅 4>에서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는 169분의 러닝 타임동안, 단103 줄 380 단어(시나리오 기준)만으로 연기를 완성시켰다고 한다. 시인의 작품 <큰 바보>는, 글이 길고 말이 많아야 칭송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존윅'이 절제된 대사로 세계 관객을 휘어잡듯이, 시인은 우리 한민족이 친숙한 듯 친숙하지 아니한 듯 한, 그 여백으로 문학애호가들의 마음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너무 긴 詩評이 시인의 작품을 오롯이 받아들이려는 독자들을 방해한 것이 아닐까 걱정스럽다. 하지만, 필자는
"긴~글 질"을 해야 만 "깊~은 여운"을 표현할 수 있는 재간뿐이라, 달리 방법이 없음을 혜량해 주시길 독자 제위께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