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등을 돌리면>詩評
시선(詩選)과 시선(廝禪)
그 밤, 같이 이루어 보려는 개척의 세상을 꿈꾸며 왕복 일곱 시간의 길을 오고 가는 친구를 돌려보내며, 시인은 그 어느 때보다 긴 밤을 맞이했다.
굽어진 골목길을 감아 돌며 아스라이 사라지는 누런빛 헤드라이트를 보는 시인의 마음이 결코 편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남는 시인도, 떠나가는 친구도 이미 중년의 나이에 이른지라 젊은 날의 꿈 따위는 깊게 파여가는 주름에 묻혀 오래전에 잊힌 것이라 생각했다.
누구는 긴 여정의 어둠 속으로 떠나고, 누구는 깊은 시름으로 긴 밤 동안 뒤척여야 하겠지만, 시인은 승용차의 낡은 헤드라이트가 쏘아내는 직진의 아스팔트를 보며 문득 깨달았다.
그 누런 헤드라이트 조명이, 잊은 줄 알았던 꿈을 발견하곤 두 손 불끈한 채 가슴 벅찬 즐거움 안고 떠나는 친구의 황금빛임을.
친구는 앞만 보고 내달리니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를 것이나, 시인은 친구의 등 뒤에서 친구가 밝히며 나아가려는 길을 살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이 내일로 펼쳐진 그 세상이 맞다고 이 시를 통해 응원하고 있다.
걱정과 격려, 우정과 희망이 잘 드러나 있으며, 기성시인들이나 중년의 신인들에게서 기대하기 힘든 수작이다.
잘 살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나, 시인이 써내려 간 시에는 기성작가들이 찬란한 시어를 배열하는 뻔한 레시피가 없다. 또한 현란한 시어들을 구사하며 젠체하는 '작가 나부랭이'들이 갖지 못한 깜냥이 느껴진다.
평이한 소재이나 귀한 시선(視線)으로 독자의 감성을 이끌며, 일상어로 표현하지만 내밀한 위치에 숨겨진 시인 만의 한 두 시어(詩語)들이 훅하고 필자의 눈을 희롱하는 순간, 마치 시선(廝禪*스승과 제자가 서로 문답을 주고받으며 주요한 뜻의 진리를 탐구함)의 고상함을 맛보게 한다.
친구가 느낀 심중의 두근거림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체증 같았는데, "열뜬 바람"이라는 시인의 그 한 마디 시어가 체증의 정체를 밝혀 명확히 밝혀 냈다.
미술계에서 인상파니 극사실주의니 하는 신사조가 나와서 세간의 모든 욕과 조롱을 섭렵하였듯이, 시인이 묶어 내는 시집은 분명 문단의 호평과 혹평, 부러움과 시기를 동시에 받게 될 것이다.
시인의 결이 오롯이 묶여진 詩選이 나오는 날, 초판 초본은 필자가 독자 되어 미리 예약해 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