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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개비 Apr 16. 2024

세대 학살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어른이어서

1999년 씨랜드 참화

유치원생 19명, 어른 4명 사망

2014년 세월호 침몰과 구조방치

학생 250명, 어른 54명 사망


그리고... 또...

2022년 이태원 참사

20대 106명, 10대 13명, 30대 이상 40명 사망


유사 이 모든 한민족의 시대를 통틀어, 전시상황이거나 제국주의 강점기가  아닌 모든 시대에, 어른세대가 자신들보다 어린 자식세대에게 이렇게 잔인하고 무책임했던 적이 또 있었던가.


세대 학살이다

길이 끝날 때 공터 한 가운데에서 노란 불빛이 필자를 이끌었다


필자가 처음 팽목항을 찾은 것은, 그 참담한 사건(*사고가 아니라)이 발생하고 한참이 지난 20173월이었다. 사건 발생 무렵 애진즉 찾아가서 분향하고 싶었지만, 차마 학생들의 사진을 마주하고 유족들이 쏟아 내는 피눈물을 감히 함께 할 염치가 없었기 때문에 늦은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앞선 세대가 따르는 세대에 저지른 가해의 진실을 마주 할 염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 분향소에서 타들어가는 슬픈 향내를 맡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세월호 수색을 중단하고 선체를 인양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산에서 승용차로 약 4시간 거리...
그곳에는 세대학살장이 있다.

울돌목 드높은 교각을 건너 팽목을 향하는 길은 낯설고 좁았다. 명량바다는 하얀 포말과 알 수 없는 찌꺼기들을 토해내며 어지러이 돌고 있었다. 띄엄띄엄 켜지기 시작한 진도의 가로등은 어두웠고, 그 길에 늘어 선 가로수들은 스산한 어깨춤낯선 이방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씩 보이는 시골 교회들의 붉은 십자가는, 세월호가 무책임하고 몰염치했던 어른들이 가해를 저지른 거대한 학살장이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늦은 출발을 하였던 탓에 사위(四位)에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고서야 겨우 팽목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승용차의 헤드라이트가 야트막한 동산의 깎여 나간 허리를 비추며 돌아설 때만 해도 이곳이 맞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시간이 늦은 탓도 있었지만, 마치 일부러 숨기려는 듯,  아무도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인 것처럼 작은 안내판 하나 보이지 않았다. 혹시 하며 내비게이션을 다시 확인하려는 찰나, 샛노란 불빛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세월호 분향소였다. 그 샛노란 불빛을 보자, 문득 어린 시절 뒷산에서 불장난을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추운 겨울 동네 공터에 친구들이 모여 앉는다. 왕방울 만한 눈을 가진 아이의 얼굴이 큼직하게 인쇄된 분유깡통에, 벌건 녹이 슨 못을 가져와 짱돌로 두드려 얼마간의 구멍을 내면 꽤나 쓸모 있는 난로가 되었다. 잔가지들에 불을 붙인 뒤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면 깡통구멍으로 새어 나온 불빛들이 퍼져 노란 불덩이로 보였다.

분향소에 켜져 있던 그 노란 전등들이 딱 그러했다.

불쑥 들어갈 염치가 없어서 밖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그리고 2023년 4월 15일...

첫 방문에서 6년이 지났으니 무엇이든 달라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아진 것은 없다. 생각조차 하기 싫은 그날 7시간처럼 모든 것이 멈춰진 느낌이다.

오히려 더 녹이 슨 팽목 컨테이너 성당, 더 바랜 아이들의 사진, 어둠을 밝혀 줄 것이라 믿었던 진실은 점점 삭아서 녹물을 흘리며 스산함을 더하고 있다.

문이 닫히기 직전이라 운좋게 기도를 올릴 수 있었다.


우리세대 무책임과 몰염치의 녹슨 상징


반드시 진실의 날이 올 것이다


보수와 진보, 민주와 독재, 빨갱이와 친일파...

아이들이 살아있어야 그것들이 의미 있는 것이지, 그깟 것들이 무슨 소용일까. 자식 잃은 슬픔이 가득한 유족들의 마음에 그깟 것들이 들어갈 자리가 한 치라도 있겠는가.

십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5명의 실종자와 별이 된 250명의 아이들, 그리고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먼저 챙기던 다수의 어른 희생자들 앞에서 도대체 그따위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할 수 있는게 기도와 기억 뿐이다...


기억돌무지를 비집고 노란민들레가 외줄기 꽃대를 올렸다


잊지 않을게.


살면서 때때로 웃게 되겠지만, 그대들을 잊지 않을게.

그대들의 세대에게 저지른 무책임하고 몰염치한 세대학살을 부끄러워하며 오래도록 잊지 않을게.

밤하늘을 밝히는 별들이 그대들의 눈물방울임을 잊지 않고, 4월이면 지천의 들꽃들이 피워내는 꽃향기가 채 피어나지 못한 그대들이 세상에 흩뿌리고 싶어 했던 그 향기임을 잊지 않을게.

시간이 지나 리본이 올려진 팽목항의 조약돌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최소한 그 조약돌의 무게만큼 이라도 그대들을 향한 미안함은 간직하고, 부끄러운 어른임을 잊지 않을게.


미안하다. 지켜 주지 못해서...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마음의 탈상을 합니다. 하지만 잊지 않고 늘 부끄러운 마음을 안고 살아가겠습니다.

세월호 피해유족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올리며 늘 여러분을 위한 기도를 빠뜨리지 않을 것을 얼굴을 드러내고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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