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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개비 Feb 22. 2024

<소풍> 거침없이 불편한 영화

2024.2.7. 김용균 감독

(잠시 영화평에 앞서), 필자는 개인적으로 <소풍>에서 남자 주연 "정태호"를 맡은 박근형 배우의 팬이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물게 천의 얼굴을 연기하는 배우이다. 네트워크가 발달한 작금의 시대에 내로라하는 수많은 배우들이 텔레비젼이나 스크린, 무대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는데, 대부분의 연기자들은 목소리, 얼굴근육, 몸짓 등을 이용해 천편일률적인 "연기 같은 연기"를 할 뿐이다. 연예계에서 짬밥이 오래되어 유명세를 갖는 배우들이  다수 있기는 하지만, 그런 연기자들이 출연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배역의 이름이 다르고, 다른 옷만 입었을 뿐 별반 차별성을 느낄 수 없다. 그런 와중에 눈빛으로 연기를 펼치는 박근형 배우는 가히, 군계일학의 수준이다. 물론 전적으로 편향된 "개취(개인의 취향)"이긴 하다.

기업회장을 연기할 때는 기업 회장의 눈빛, 노숙자 연기를 할 때는 노숙자 눈빛이 된다. 때론 무기력한 아버지가 되어 자식들의 눈치를 보고, 또 어딘가에선 누군가의 키다리아저씨가 되기도 한다.

그의 어깨는 숀 코네리가 007 슈트를 통해 보여주었던 품위를 지녔고, 로버트 드니로가 인턴으로 변신해서 미소 지었던 천재성과 알파치노의 눈동자가 숨긴 야수성을 모두 지녔다. 그런 그가 영화에서 첫사랑의 두근거림을 간직한 60대의 노인으로 변신한다고 하니 놓칠 수가 없다.


영화 <소풍>


참으로 아름다운 제목이다. 단 두 글자의 짧은 단어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보면, 필자가 겪은 소풍이란 것은 꽤나 간직할 가치가 있는 추억이었나 보다.

자신이 만든 막걸리를 납품하던 국밥집에서 우연히 첫사랑 "고은심(나문희 분)"을 만난 "정태호(박근형 분)"

예의, 극장에서의 매너들을 소개하고 몇 개의 예고편과 이어진 오프닝이 끝나고, 영화는 시작된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약간 불안함이 엄습한다. 약한 강도의 오컬트라고 표현하는 것은 다소 과장이겠으나, 영화라는 또 다른 세계에서까지는 차마 만나고 싶지 않은 현실세계의 "리얼"이 시작부터 그려지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막내였던 필자는 할머니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잤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할머니 친구들이  찾아오셔서  주고받으시는 일상의 얘기를 듣는 것이 다반사였다.

누가 죽었네, 누가 야반도주 했네, 누구는 춤바람이 났네, 누구는 도박에 빠져 재산을 말아먹었네, 또 누구 집 며느리가 애를 낳았는데 소아마비라네 등등... 좋은 일이 퍼져 나가는 것보다는 반갑지 않은 일들이 퍼져 나가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웠다.


영화 <소풍>도 그런 그림을 그린다.


정태호가 운영하는 막걸리양조장을 찾은 친구들
영화에 관한 평론가들의 지적

시사회가 끝나고 유명 평론가들이 경상남도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영화인데 불구하고,  배우들의 어색한 사투리 연기와 지역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홍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쏟아냈다. 맞는 말이다. 동네 출신 배우들이 아니다 보니 억양도 억양이려니와, "~노, ~나"를 제대로 구분해야 하는 "상도"사투리가 배우들에게는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차라리 사투리를 안 써도 크게 나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여하한 갱상도 싸나이인 필자는 영화의 배경도시가 어디이든 간에 굳이 매일 듣는 향토 사투리를 듣고 싶지 않았고, 몇 번 방문했던 적이 있는 남해도의 마을이 영상에 담겨서 반가운 회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윤슬이 반짝이는 남해 바다를 떠올리는 그 자체로 이미 소풍이 가고 싶어지니 경상남도의 지원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낯설었다

필자가 보기에 "정태호(박근형 분)"의 연기는 대배우 박근형 답지 않게 다소  어수선하고 과장되어 있다. 하지만 길을 걷다가, 혹은 식당에서나 관광지에서 우연히 지나가는 첫사랑을 만나 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는 관객이라면 박근형 배우의 다소 들뜬 어깨가 무엇을 보여 주려고 했는지 잘 알 것이다. 첫사랑을 머릿속에 떠 올리는 것만으로 이미 필자 역시 어깨가 들뜨고 얼굴은 달뜬다. 첫사랑과 뭘 어찌해보겠다는  꼼수가 아니라, 그냥 '첫사랑'이라는 단순하지만 미묘하고 복잡다단한 그런 이유이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름답다고들 한다. 오롯한 그 순수의 시대를 직면해 본 기억이 있다면 팔순을 넘었더라도 정태호의 과장됨을 충분히 납득할 것이다. 박근형의 연기는 다소 '허덜스럽고 정제되지 않은' 오버액션이지만, 정태호의 감정표현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과장된 박근형의 연기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들뜬 정태호를 보이는 그대로 느낀다면 대배우 박근형의 진면목을 다시금 깨닫게 되실 것이다.


기대하지 마시라, 뻔한 흐름이다

굳이 영화의 내용을 설파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하겠다. 어버이날을 전후해 어느 방송사에선가 다루었음직한 소재이고, 지방의 신문사들이 지역뉴스로 다루었을 지역공동체 갈등, 그리고 어린 시절 귀동냥으로 종종 들었던 야반도주와 자식들과의 갈등들이 주요한 흐름이다.

일상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극적인 반전은 당연히 있지 않으니, 애초에 기대하지 마시라. 특히, 집안 어른들과 보기에는 매우 매우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불편하다.


잘못한 자식이 부모에게 사죄하지 않고,

실수한 어린 것들이 동네 노인들을 무시한다.

자식들에게 버림받아 요양원에 버려진 친구를 두고 보기만 해야 하는 친구들, 투기 자본의 개발에 밀리는 원주민들의 삶, 무엇하나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감독이 화해하고 포옹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라고 했다면 그저 뻔한 교훈을 주는 영화였을 뿐인데, 불안한 갈등과 답답한 해결 만을 나열해 주어서 리얼이다.

세상 소풍의 끝을 준비하는 금과 은처럼 소중한 친구, 고은심(나문희 분)과 진금숙(김영옥 분)

왜 두 사람이 여기 서있는지는 영화를 보시라.

마지막 임영웅의 OST가 나오기 전, 약 7초 간의 정적이 흐른다. 필자가 경험했던 그 어떤 7초보다 불안하고 먹먹해지는 7초였다.

정적의 끝에서 "임영웅"의 <모래알갱이>가 흘러나온다.

영화의 끝, 진금숙이 바다를 보고 웃고, 왔던 길을 뒤돌아 보며 또 웃는다. 진금숙의 아들 "성필(임지규 분)"이 엄마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충분히 만족한 삶이었기  때문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세상소풍의 끝날에 소중한 소녀시절의 친구가 함께 기 때문일까...

금숙이가 돌아보며 웃는 것이 반전이라면 반전이었다. 그저 자살여행이라 결론지었을 영화가 열린 결말로 받아들여 지는 것이 금숙이가 돌아보며 웃었기 때문이다.




김용균 감독은 갈등이 난무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이 혼재하는  현존의 삶을 죽음이라는 프리즘을 가져다 놓고 그려내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제목은  <소풍>이 될 수 있었다. 마치 "천상병 시인"이 말한 그것처럼 때가 무르익으면 끝내고 돌아가야 하는 바로 그 "소풍"이다.

극히 짧은 애틋함과 극히 짧은 추억, 그 와중에 누구보다도 비참하고 불행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자신들의 불편한 자화상이다.

현란한 대사를 이용해 삶의 고단함을 애써 잊으라 말하지 않고, 다가오는 죽음의 고통을 영상미로 감추지 않았다.  이 영화 어디에서도 거창한 삶의 교훈이나 헛헛한 죽음의 부질없슴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것을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더 담담하고 명확한 어조로 가볍게 세상 소풍을 얘기하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간다.

부산 "영화의 전당"은 자막이 다 올라가야 조명켜준다.

여운을 즐기라는 배려이다.

<소풍>이 거침없이 불편한 영화인 이유는 흔히 보아 오던 현실이고, 곧 필자에게도 닥칠 미래인데 그것을 숨기지 않아서 였다.

엔딩  후, 이내 불이 켜지고 관객들이 빠져 나간다.

오늘 따라 객석의 빈자리가 더욱 공허하게 다가 온다.

모두가 자살여행을 방조한 공동정범이라도 된 듯 묵묵히 흩어져 간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歸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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