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도시탐구

충남 논산, 태생이 군사도시

지혜가 세운 가루지기 부처님

by 바람개비

인구 12만의 소도시인 충남 논산, 누런 흙이 산을 이루어 "노란 뫼 >> 논뫼 >> 논산"이 되었다. 어쩌면 "노란 뫼"는 몰라도 계백과 오백 결사대의 "黃山벌"은 다들 잘 아실 것이다.
계룡산 신묘한 줄기가 서해용왕을 만나러 뻗어나가는 길목인 듯도 하지만, 마지막을 예감한 백제의 결사대에게는 그리 복록을 주는 땅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지 견훤을 폐위시키고 왕건과 마지막 일전을 치른 신검 또한 이곳 황산벌에서 패배하였으니 어쩌면 황산벌의 지세는 방어군보다는 공격군에게 유리한 지형인 것 같다. 행여 이 땅에 다시 전투가 벌어진다면 이곳에 방어진을 형성하는 우(愚)는 피해야겠다.


소싯적, 시멘트가 덕지덕지 발라져 있던 익산 미륵사지 석탑 다음으로 뇌리에 남아 있는 국사책의 기억은 바로 논산에 있는 이상하게 생긴 돌부처였다. 불교 신자님들께는 다소 불경스러운 비유이겠지만, 마치 만화가 고우영 화백이 그린 천하장사 <가루지기>를 연상하게 하는 4등신의 특이한 모습이었으니 결코 잊힐 리가 없다.

가보신 분들이 많이 계시겠지만, 이 정력왕처럼 생기신 부처님은 "은진미륵"으로 잘 알려진 논산 관촉사의 돌부처이다. 그 높이는 무려 18.2m이니 아파트 7층과 맞먹는다.
고려 광종 때, 100명의 석공과 1,000명의 노역이 동원되어 목종에 이르기까지 무려 37년 간에 걸쳐 조성된 석조불인데, 시기를 살펴보면 몽고의 침략과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6.25의 화마에도 파손 없이 잘 버텨 낸 신통력을 갖춘 불상이라고 봐야겠다.
한국에서 가장 큰 석조불상이기도 하거니와, 바로 앞에는 우리나라에서 화엄사 각황전 석등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석등이 또 하나의 볼거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 발아래에서 거대한 돌부처와 석등을 보고 돌아선다. 하지만 관촉사 은진미륵의 진수는 불상 옆에 있는 얼마 간의 돌계단을 올라 '삼성각' 앞에서 바라보는 장면일 것이다. 시원하게 탁 트인 은진 들판과 수묵화처럼 아련하게 계룡산이 멀리 조망되어 보기에 아주 좋다. 다만 근처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발 밑을 내려보노라면 부처님 어깨너머 멀리 보이는 속세가 참으로 답답하게 보이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4월에야 겨우 국보 323호의 지위로 승급을 하게 된 관촉사의 은진미륵, 그 외에도 보물로 지정된 석등과 배례석, 윤장대 등 많은 볼거리를 가진 절이라서 입장료 2,000원이 전혀 아깝지 않은 구경거리를 제공한다.


필자는 불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사찰 여행은 여러모로 항상 옳다. 전통의 건축물들이 가져다주는 안락함이랄까, 아니면 보기 드문 고(古) 미술의 예술적 메시지가 뇌파를 안정시켜 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도 저도 아닌, 낯선 세계로의 도피행각이 빚어낸 피안의 평화일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주차장과 연결되어 전혀 피로감 없이 들러 볼 수 있다는 점이, 게으른 나그네에겐 최고의 장점이다. 4월 중순에 입구에 벚꽃이 만발하고, 지금은 양귀비 꽃이 만발하다. 그동안 코로나로 취소되었으나 4월이 되면 벚꽃의 흐트러 짐과 더불어 국보 승격 축하 축제를 동시에 개최한다고 합니다. 오늘내일, 당장 가루지기부처님과 씨름을 하실 일이 아니라면 벚꽃만발한 계절이나 은진들판이 노랗게 물드는 계절에 맞추어 가시는 계획도 좋겠다.


꼭 한 번 보고 싶었던 국사책의 주인공들을 만난 여정이었다. 비록 오롯이 관람에만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었지만 이번 여정은 개인적으로 참 추억팔이에 좋은 시간이기도 했다.

귀갓길에 우뚝하니 눈길을 잡아 끈 연무대,

아직도 28 연대는 여전히 있으려나요... 하... 만감이 교차하는 곳이다. 군번 13822 ×××, 이건 또 왜 이리 안 잊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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