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시민항쟁 기념일, 1987년 그날도 오늘처럼 눈이 부시게 햇살이 내리쬐던 날이었는데, 그 뒤로도 수구세력들을 물리 치려는 수많은 시민들의 염원은 여전히 그치질 않고 있다. 오히려 대한민국 정치는 룰도 없고, 점점 길거리 개싸움이 돼가고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여야가 서로 겨눈 창검의 끝에는 촌철살인의 해학이나 풍자가 묻어 있기도 하고, 서로를 위한 퇴로를 마련해주기도 하였었는데, 이제는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떠도는 정제되지 않은 단어들이나 애초에 있지조차 않았던 얘기들이 사실이라는 가면을 쓰고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온다. 특정 정당을 편들거나 면박 주자는 것은 아니고, 필자는 이런 불편해진 사회현상들이 이 시대를 어루만지고 이끌 '시대의 어른'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지금은 우리 곁에 없는, 앞선 어른이셨던 어떤 "바보"를 떠올린다.
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시를 좋아하셨으며, 대한민국 가톨릭의 수장이셨으면서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으로 시작되는 '서시'를 제대로 읊어 볼 생각을 못했던 이유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게 많아서..." 였다고 스스로 한탄하셨다. 하지만, 명동성당에 도피한 학생들을 잡아가려던 신군부 세력에게 "학생들을 잡아가려면 나를 먼저 밟고, 다음으로 수녀들을 밟고 가라" 일갈하실 수 있었던 그분의 배짱은 아마도 하느님 앞에 당당하셨던 스스로의 양심이었을 것이다.
그분이 네 살 때부터 신학교에 들어가던 십 대까지 유소년 시절을 보냈던 집이 군위읍에 보존되어 있다. 생전에 종종 들르셔서 툇마루에 앉으셔서 한 참을 머물다 가시곤 했다고 한다. 천주교가 핍박받던 시절, 많은 교인들이 생계와 이동의 자유를 보장받고자 옹기장수를 하였는데, 김수환 추기경님의 부모님께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간의 사정이 그렇다면 옹기를 싫어할 만도 한데,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을 빌리자면, "옹기는 좋은 것, 나쁜 것, 깨끗한 것,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몸에 담아 주는, 품이 넉넉한 그릇"이었다. 그래서 오물조차 기꺼이 품어 안는 사람, 세상엔 옹기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셨다.
<바보 김수환>이란 어른께서 스스로를 기꺼이 낮춰 부르시던 말이다.
"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 그리고,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마음’, 처음 두 가지는 그나마 쉬웠는데,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마음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사랑을 준 게 아니라 받았다고 생각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마음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뒤늦게야 그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일까... 칠십 년이 넘게 걸려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정말 바보 중의 가장 큰 바보로구나... 그동안 많이 사랑받아서 고맙습니다”
바보라는 깨달음, 사랑을 베푼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이라는 깨달음, 그것이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그분께서는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반만년을 지켜 온 민족의 자존심을 버리고, 있는 자, 많이 가진 자들이 오히려 없는 자들의 밥그릇을 뺏어먹기 위해 야차로 변해버린 것이 작금의 시대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밥(양분)이 되어주자"하시던 그분의 가르침을 쉬이 따를 수 없는 이유는, 단지 IMF라는 괴물을 거치며, 귀신보다 무섭다는 가난을 겪으며 생긴 트라우마 탓이기만 한 걸까...
어쩌면 추기경께서 보신다면 기념공원이 너무 크다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막상 사진의 느낌과는 달리, 크게 화려하거나 사치스럽지는 않다.
그러나 충분하다. 모여서 비 맞지 않고 미사를 드릴 작은 성당 하나, 지친 자들의 허기를 달랠 구내식당 하나, 유품들과 생애를 모아 둔 추기경기념관과 관리실, 지나는 방문객들이 시골 농로를 막지 않아야겠기에 필요한 작은 주차장.
그리고, 군위 벌판을 내려다보시며 인자한 미소를 띠고 계신 우리 시대 위대한 안경잽이 "바보"님...
꼭 한 번 와보고 싶었던 곳, 군위.
멀지 않은 곳에 삼국유사를 인쇄했던 인각사도 있고, 경주 석굴암보다 오래된 제2 석굴암도 있으니 시간을 넉넉히 준비할 일이다. 이 시대에도 원로다운 원로가 출현하시길 기도드리며 짧은 시간 머리칼을 들었다 내려놓는 바람 같았던 군위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