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설 때, 부엌에서 엄마가 도마를 두드리시는 소리가 들리는 날이 종종 있었다. 그 날은 어김없이 만두소에 사용하실 묵은 김치들을 꺼내어 칼로 다지고 계셨다. 이 날은 집에 있던 모든 재고 김치들을 없앨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열무김치, 동치미, 옆 집 아주머니가 가져오셨던 김치, 묵은 김장김치, 심지어는 장독대 윗부분에서 살짝 곰팡이가 피었던 김치들도 깨끗이 씻기운 뒤 도마 옆에서 엄마의 칼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양 손에 칼을 들고 마치 유명 주방장처럼 김치를 다지시는 엄마의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어 보이던지 늘 칼을 달라고 해서 내가 직접 "칼 다듬이질"을 했다.
힘찬 칼 춤에 도마 가장자리로 슬금슬금 도망을 가는 김치는 놓치지 않고 다시 도마의 중앙으로 데려와 놓고 다듬질을 했고, 오래지 않아 모든 김치들은 만두소에 적합한 크기가 되었다.
물기를 빼기 위해 하얀 마포 자루에 손질한 김치를 담아 우물가 그늘진 댓돌 위에 둔 채할머니가 애지중지 아끼시던 무거운 다듬이돌을 올려 두는 일은, 힘이 좋은 형의 손을 빌지 않으면 어린 내가 혼자 하기엔 꽤나 어려운 몫이었다.
다음 날 본격적으로 만두를 빚기 시작하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각 자의 맡은 바 일을 해야 했다. 엄마는 어제 준비해 두셨던 김치와 두부, 돼지고기를 넣어 만두소를 완성하셨고, 전광석화 같은 솜씨를 발휘하셔서 적당히 말랑말랑한 밀가루 반죽을 공급하셨다. 나와 누나, 형은 주전자 뚜껑과 작은 공기 밥그릇으로 만두피를 떠내야 했는데,사실 밀가루 반죽을 너무 두껍지도 너무 얇지도 않게 골고루 펴서 만두피를 떠내는 작업이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할머니와 누나는 예쁜 모양으로 만두를 완성시켰는데, 반달 모양보다는 끝을 붙여 동그랗게 빚어내는 꽃만두가 더 예뻤다.모양과는 별개로 조리방법에 따라 특성이 있었는데 반달 모양은 군만두였을 때 맛이 더 있었고, 꽃만두는 만둣국을 끓여 냈을 때 탱글탱글한 식감을 더 잘 유지해주었다.
누나는 가끔 새까만 내 손톱 밑을 보고 기겁을 하였으나 일손이 부족하니 내 더러운 손도 꽤나 도움이 되었다. 만두피를 다 뜨고 나면 몰래 "복불복 만두"를 만들었다. 일부러 만두소는 조금도 넣지 않고 밀가루만 넣는 것이었는데, 그게 누구 몫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게다가 몇 개를 몰래 만들고 나면 새까맣던 손톱 밑이 깨끗해졌으니 그 손톱 때들이 어디로 갔을지는 상상에 맡겨야겠다. 그렇게 비밀스레 제조된 만두는 나 자신에게도 당첨될 수도 있었으니 진정한 '복불복 만두'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 오십 개쯤 만두가 만들어지면 엄마는 부엌에 가셔서 만둣국을 끓이셨다. 입이 까다로웠던 형은 늘 군만두를 같이 주문했고, 그런 형의 미리주문 덕에, 나는 "대면대면, 욕심 없는 아이"였던 이미지를 잘 유지할 수 있었다. 군것질거리가 넉넉하지 않던 시절이라 군만두는 요즘의 닭강정이나 핫도그처럼 최고의 간식이었다.
이윽고 만둣국이 끓여지고 기름기 촤르르 흐르는 군만두를 올린 상차림이 준비될 쯤이면, 엄마는 내게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하셨다. 이웃에 가족들 없이 혼자 사시는 할머니에게 끓여 낸 만둣국을 한 냄비 전해 드리고 오라는 것이었다. 없는 살림에 그것이 참으로대단한 배려였슴을 깨닫는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만두를 먹게되면 매 번 눈물을 흘리시며, 심부름을 간 내 손을 잡아주시던 이웃 할머니가 아련히 떠오른다.
<만두 백반>이라는엄마의 마법이 준비되면 이번에는 온 가족이 모여 앉는 진수성찬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온 가족의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것이니 어찌 맛이 없을 수 있었겠는가. 더욱이 복불복 만두가 가족 중, 누군가의 입 속에서 발견되면 하하호호 웃는 재미까지 더해졌다. 대충 한 번 작업에 이, 삼백 개의 만두를 만들어 넓은 산죽나무 소반에 잘 건조해서 냉장해 두면 족히 삼, 사일의 먹거리는 걱정이 없었다.
그 만두 백반을 평생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적어도 그때는...
하지만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엄마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셔서 하늘의 별이 되셨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사, 오 년쯤이 지나 누나와 형이 함께 앉아 엄마의 방법을 떠올리며 만두를 빚어보았지만 결코 그때의 맛은 아니었다.
엄마의 만두엔 가족끼리 나누는 사랑과 즐거움이 담겨 있었고, 우리 형제가 만든 만두엔 엄마를 생각하는 슬픔과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어찌 같은 맛이 나겠는가.
요즘은 공장에서 기계부속처럼 생산되는 만두가 많아서 대부분의 가게에서 냉동 봉지 만두를 구매할 수 있고, 만두 백반도 여느 백반집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흔한 메뉴가 되어버렸다. 적어도 그 시절 만두 백반은 집집마다 고유한 재료와 방법을 담아 서로 다른 특색이 있었는데, 지금은 일부러 옛날식 만두집을 검색해서 찾아다녀야 하니 아쉬움이 그지없다.
<만두 백반>이 거창하고 화려한 한정식은 아니다. 고대로부터 전해져 오는 우리 민족 특유의 음식이라고 지칭하기도 어렵다. 다만 이틀을 준비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빚어내던 그 만두로 준비했던 <만두 백반>은 가히 그 시절 최고의 한정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