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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개비 Jul 05. 2021

골목길

(1) 직선의 골목에 선 남자

집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결혼이었다. 마침 비슷한 환경에서 탈출의 기회를 엿보던 여인이 나타났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부랴부랴 서둘러 궁핍한 결혼을 했으니 넉넉한 집을 구할 수 없었다.

겨우 구한 전셋집은 창문을 열면 맞은편 집이 훤히 보일 만큼 가까웠다. 날씨가 더운 날이나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다가 맞은편 세입자와 눈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인사를 나눈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TV 소리는 물론이고, 밤이 되면 옆집 사람들의 얘기 소리까지 두런두런 들렸으니, 민망함이 걱정되어 신혼의 부부생활까지도 마음껏 할 수 없을 만큼 좁은 골목이었다.

철거민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동네이다 보니 골목은 꼬불꼬불함 투성이인 부산답지 않게 4~500m를 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대여섯 집을 하나의 블록으로 구획해서 중간중간 갈림길이 있기는 하였지만, 곧게 뻗은 직선의 골목을 관통하는 바람이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1층은 대부분 불법으로 개조되어 주점이나 식당이 들어서 있었다. 배달부들이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 소리는 오히려 금새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자정을 넘기는 시간까지 여기저기서 싸움이 일어나고 백차(경찰차)가 출동하는 일들이 다반사였다. 그나마 3층이라 취객의 행패로 유리창이 파손되거나 취객이 문을 두드리는 절망은 없었으니 참으로 좋았었다. 족히 60도는 됨직한  3층 계단의 경사도가 고맙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그럴 때였다.

저녁에는 술안주로 제공되는 오만가지 음식 냄새가 창문 틈새로 스며들었고, 환풍기로 분출되던 후덥지근한 열기도 집안을 빗겨 가진 않았다.

 이른 새벽 출근을 위해 1층으로 내려서면 제일 먼저 취객들이 구토를 한 냄새가 골목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골목길 전봇대 여기저기에는 취객들이 쏟아 놓고 간 소변의 흔적들이 채 마르지 않은 채 얼룩져 있었는데, 낮이 되면 그 전봇대는 어린애들이 안고 노는 놀이기구였고, 동네 노인들이 기대앉는 등받이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유를 잘 모르겠다.


처음 살아보았던 직선의 골목은 불과 4~500m 거리였다.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있는 휘어진 곡선의 골목들은 은밀함이 있었지만 그렇게 추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직선의 개방감 넘치는 골목들이 더 추악하고 더 많은 범죄와 더 난장판이었던 이유를 모르겠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 직선의 골목을 빠져나오는데 2,000일 이상이 걸렸다.

지난달 역을 한 큰아들이 독립선언을 하고 훌쩍 서울로 떠나 버렸다. 살 집을 구했다는 동네 사진을 보니 결코 반갑지만은 않은 직선의 골목이다. 맞은편 집과 창문을 열고 인사를 나눌 만큼 좁은 골목은 아니지만, 저 골목을 빠져나오는데 필요한 노력과 행운의 총량이 얼마인지를 알기에 아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무수저의 아들로 살아가야 하는 것은 참으로 고단할 것이지만, 그래도 반드시 이 골목을 빠져나오는 날은 올 것이다. 골목 끝 빵집에 앉아 아들이 어서 빨리 골목을 벗어나는 모습을 지켜봐야겠다.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멀리 도망쳤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는 직선의 골목 위에 서 있었나 보다.

마치 러닝머신 같은 직선의 골목......



본디 내가 태어나고 살던 집은 차가 다니는 큰 길에서 꼬불꼬불한 골목으로 접어들어 약간의 언덕을 오르며, 어린 보폭으로 제법 걸어야 했던 골목 끝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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