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로 부터...본디 내가 태어나고 살던 집은 차가 다니는 큰길에서 꼬불꼬불한 골목으로 접어들어 약간의 언덕을 오르며, 어린 보폭으로 제법 걸어야 했던 골목 끝집이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갑자기 피난민들이 몰려든 부산의 산 중턱들에는 꼬불꼬불한곡선의 골목들이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이 생겨났다. 사람이 옮길 수 없는 바위들은 안돌이로 피해야 했고, 사람들이 모여 쉴 수 있는 큰 나무는 보호수로 지켜줘야 했다.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샘은 특히 보존의 대상이었기 때문에이런 저런 구색을 맞추다보면 자연스레 골목은 구부러지고 휠 수밖에 없었다.
곡선으로 완만히 휘어진 각도 탓에 골목의 바깥이나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서로를 볼 수 없었다. 곤궁한 동네이다 보니 뭐 특별히 훔쳐 갈 것도 없는 동네였다. 어른들은 우스개소리로 "아무개 집에 도둑이 들었다가 가져갈 게 없으니 불쌍하다고 돈을 돠두고 갔다더라"는 얘기들을 하시곤 했다.
산업화를 향해 정신없이 치닫던 그 시절, 강력범죄예방을 위한 cctv 하나가 변변히 없었지만 꼬불꼬불한 골목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대부분 생계형 좀도둑이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골목의 최대 범죄는, 야간 공고를 다니던 똥식이 형이 담배를 피우기 위해 망을 봐달라는 것이었다.
구부러지고 휘어졌지만 골목은 그 특성 상, 숨바꼭질에 최적화된 장소였다. 술래가 있는 곳에서 한 모퉁이만 돌아 서면 온전히 나를 숨길 수 있었으니, 설령 술래가 굽이를 돌아 나타나더라도 신발끈을 꽉 동여 메고 기다리다가 추진력을 이용해 먼저 달려 나가면 '찍뽕'의 승률이 훨씬 높았다.똥식이 형도 같은 이유로 골목을 택했던 것이리라.
밤이 되면 골목은 좀 무서워졌다.
전기가 귀한 시절이다 보니 대부분의 가로등은 큰 골목 어귀에만 설치되어 있었고 골목 끝집까지는 빛을 나눠 주질 못했다. 운이 좋아 약주를 드신 동네 어른께서 지나가면 얼른 뒤따라 붙어 최대한 집 가까이 조금씩 약진하는 방법뿐이었다.
어두운 골목에는 괴물이 살고 있었다.
밤 길의 두려움이 사라지는 나이가 될 때까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골목의 어둠속에는 분명 아이들의 고추를 따먹는 괴물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분명, "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 오라"시던 부모님 말씀을 거스른 것에 대한 어둠의 요정이 내린 벌이었다.
휘어진 골목에서는 학수고대의 기약 없는 기다림이 즐거움이었다.구불구불한 골목에서는 멀리까지 보이지 않았기에 오히려 기다림이 조급하지 않았다. 현실 인정은 빠를수록 좋다고 했지. 맞다. 어차피 안보이니까 조급할 게 없었다.
직선의 신작로라면 저기 길 끝에서 아버지가 들고 오시는 누리끼리한 재생지 봉투나 돌돌 말린 신문지 뭉치가 보였을 것이고, 그 속에서 과자나 음료수를 발견하게 되는 기다림의 보상은 훨씬 밋밋했을 것이다.
골목 입구 계단에 걸터앉아 있다 보면, 퇴근 후 골목 어귀를 들어서시던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던 과자나 장난감을 발견하고 환호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과자를 마중하고, 아버지는 멀때처럼 살가움 없는 막내아들의 환한 웃음을 마중했다.
마중과 마중의 만남
노란 갱지에 기름이 베어 축축해진 것을 보는 날은 제대로 대박이 터지는 날이었다. 안에 담겨 있는 것은 분명 골목시장 입구의 튀긴 통닭이었으니 말이다.
골목은 직선이 아니다 보니 환기가 잘 안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골목 통닭을 사들고 오신 날 골목에 퍼진 통닭 냄새는 수 삼일을 갔다. 그 냄새만으로도 행복했다. 고추 따먹는 괴물쯤은 단숨에 잊힐 만큼...
구부러진 골목은 은근한 기대와 희망, 즐거운 학수고대의 공간이었다.하지만 산업화를 거치며 도시 재개발이 가속화되었고, 휘어진 골목보다는 직선의 골목들이 너무 많아져 버렸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시절. 우리는 너무 못 살았고, 보이지 않는 이상을 꿈꾸며 기다리거나 느리게 걸을 수가 없었다. 뛰어야 했다. 당연하게도 빨리 뛰기 위해 직선의 길이 필요해졌다.
곡선이 훨씬 더 아름답고 여유로운데 일부러 더 바삐 살기 위해 많은 구부러짐을 포기해버린 사회적 약속들이 안타깝다.
구부러진 골목 예찬,배부른 감상주의자의 넋두리 일까.
직선이든 곡선이든 갱지 봉투를 안고 골목을 돌아 들어오시던 아버지를 단 한 번만이라도 더 뵐 수 있으면 좋겠다.
너무나도 간절히 그 깊게 주름지고 굳은살로 투박해져 있던 당신의 손을 잡아 보고 싶다.
골목괴물과 싸워 이기기에는 너무 어렸고, 아버지의 빈손 귀환을 마중하는 것에는 너무 무례했다. 노란 갱지 봉투를 들고 오시지 않아도 웃으며 달려 나갔어야만 했다. 물론 지금이라면 맨 발로 달려 나갈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