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상화가 강형구 작가의 며느리다.(2)

한 예술가의 길, 그리고 그 길을 지켜본 시간

by 김진경

아버님은 젊은 시절 가족을 위해 회사를 다니셨다.

집을 책임지고, 자식을 키우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바치는 삶.

그런 삶을 오래 버티신 끝에 퇴직금으로

대학로 ‘나우 갤러리’ 문을 열었다.


갤러리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돈이 없어 전시를 하지 못하는 작가들에게

공간을 무료로 빌려주다 보니 이익도 남지 않았다.

예술가의 길과 생계의 길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그 사람의 본질을 말해준다고 하는데,

아버님은 늘 후자를 택했다.

그러니 4년 만에 전재산을 갤러리에 쏟아붓고

결국 문을 닫게 된 것도 누구보다 아버님이 잘 알았을 것이다.

그때 그 공간에서

지금의 유명한 작가들—이불 작가 이건용 작가 등이—전시를 했던 것은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묘한 운명이다.

그 정신을 살리고 싶어

우리는 다시 ‘나스컨템포러리’를 열었다.

하지만 운영을 하면서 깨달았다.

갤러리라는 공간이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는 것을.

예술적 양심을 지키면서 운영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철학과 현실이 충돌할 때마다

우리는 아버님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수없이 마음을 다잡았다.

나우 갤러리가 문을 닫은 뒤,

아버님은 10년 가까이 작업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정말 ‘나오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다.

아침부터 밤까지,

단 한 명의 조수도 없이

혼자서, 묵묵히,

붓으로 세상과 씨름하는 시간.

그 침묵의 시간이 쌓이며

아버님의 작품은 점점 깊어졌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크게 조명되기 전에

먼저 미국에서 유명해졌다.

그곳에서 인정받은 뒤에야

한국 미술계가 뒤늦게 아버님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 후 아라리오 전속작가로서 10년을 함께했고,

하지만 아버님은 그 어떤 울타리에도

머물지 않았다.

작가가 갤러리를 위해 그림을 그려야 하는 구조를 벗어나

지금도 새로운 시도, 새로운 형식,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16년 동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예술이란 결국

겉에서 보는 화려함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의 ‘태도’라는 것을

아버님이 매일 증명해주었다.

작업실에 홀로 남아

멈추지 않고 움직이던 그 손.

전재산을 걸고도 예술가들을 돕고 싶었던 그 마음.

그리고 유명해진 뒤에도

어떤 명함에도 기대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다시 길을 열어가는 그 고집.


나는 그 모든 순간을 곁에서 배우며

예술교육을 하고,

갤러리를 운영하고,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지금의 나로 서 있다.


결국, 한 집안의 예술은

계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로 이어진다.

아버님이 그러했고,

남편이 그러하며,

나도 그 길 위에서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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