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성인 미술교육에서의 창의성 형성 조건
ㅡ
이 내용은 이준영 선생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공감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서술하였습니다.
ㅡ
자아를 뺐을 때의 훈련은
반복과 숙련을 전제로 한 테크닉의 영역이다.
선의 정확도, 구조의 안정성, 손의 감각을 단련하는 일.
그것은 미술인으로 필요하고, 중요하며,
분명 훈련되어야 할 능력이다.
그러나 자아를 뺄 수 없을 때의 표현은
창의의 영역에 속한다.
그 안에는 기술 이전에
존재가 개입된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자아를 넣고 빼는 선택지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자아를 ‘조절’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아로 존재한다.
아이에게 그림은
연습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고,
결과가 아니라 “말”이다.
그렇기에 아이에게
“자아를 빼고 그려라”라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은 훈련의 요청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여질 위험을 안고 있다.
자아를 넣고 빼는 훈련이
비로소 가능해지는 시기는
대체로 중·고등 이후다.
이 시기부터 아이들은
‘지금은 나를 앞세우지 않아도 되는 시간’ 과
‘지금은 나를 사용해도 되는 시간’을
조금씩 구분하기 시작한다.
이때서야
데생과 구조, 반복 훈련 같은 테크닉은
억압이 아닌 도구로 작동할 수 있다.
순서가 바뀌면 문제가 생긴다.
자아를 다루는 힘이 생기기 전에
자아를 빼라고 요구받은 아이들은
기술도 창의도 아닌
“자기검열”을 먼저 배운다.
이 경험은
성인이 되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성인 역시
온전히 자아를 비운 채 그리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머릿속에는 늘
평가의 시선이 먼저 들어오고,
비교의 기준이 앞서며,
결과에 대한 계산이 손보다 빠르다.
그래서 많은 성인들이
“나는 창의력이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창의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너무 이르게, 너무 오래 눌러온 사람들이다.
창의력이 어려운 이유는
상상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틀려도 괜찮다는 경험을
너무 오랫동안 허락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창의력이란
자아를 제거하는 능력이 아니라,
자아를 다룰 수 있는 힘에 가깝다.
필요할 때는 내려놓고,
필요할 때는 다시 꺼내 쓸 수 있는
자아와의 안전한 관계.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자아를 빼는 훈련보다
자아가 존중받은 시간이 먼저 필요하고,
성인에게는
다시 자아를 믿어보는 과정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본질적인 수업이 된다.
이 순서를 존중하지 않는 교육에서는
기술은 남을 수 있어도
창의는 자라기 어렵다.
그리고 이 불편한 진실을
끝까지 감당하려는 교육은
언제나 소수의 선택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