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의 크기

복제와의 결별

by 김진경

그릇의 크기

사람의 그릇은 얼마나 많은 것을 흡수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것을 감당해왔는지로 결정된다. 아이디어를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나 사람을 많이 알고 있다는 인맥의 크기는 그릇의 크기를 증명하지 않는다. 그릇은 언제나 실패와 경험, 그리고 인성의 깊이에서 만들어진다.

나는 같은 수업을 반복하지 않는다. 이미 지나온 생각과 방식을 재활용하는 일은 안정적일 수는 있어도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번 했던 수업을 폐기하는 선택은 더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제의 나를 그대로 복제하지 않기 위함이다."

창작은 언제나 자기 복제와의 결별에서 시작된다.

요즘은 사람을 정리하기보다 거리를 선택한다. 굳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거리, 끊임없이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서로를 흉내 내지 않아도 각자의 길이 보이는 사이. 이 거리는 단절이 아니라 존중에 가깝다.

이미 차려진 밥상 앞에서만 능숙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결과에 빠르게 반응하지만 과정에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숟가락을 드는 일은 익숙하지만 그릇을 빚는 일에는 쉽게 지친다. 밥상은 언제나 다시 차려야 하고, 자기 그릇이 없는 사람은 결국 남의 식탁을 떠돌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마음보다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자기 그릇의 상태다. 그릇의 크기는 실패의 횟수,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던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자란다. 타인의 호의와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 도움받은 것을 자기 실력으로 착각하지 않는 겸손, 그리고 타인에게 불필요한 상처나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조심성. 이 모든 것이 쌓여 사람의 그릇을 넓힌다.

눈에 보이는 것은 쉽게 흉내 낼 수 있다. 말투, 형식, 구조, 관계의 외형까지도 베껴낼 수 있다. 그러나 끝내 남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시간을 견딘 태도, 사람을 대하는 방식,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무너지지 않는 기준. 그것은 수집할 수 없고 차용할 수 없으며 결국 살아낸 만큼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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