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도 된다는 감각
아이답게 그릴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준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어릴 적 나는
잘 그리기보다는
그저 그리고 싶어서 그리는 아이였다.
선은 자주 삐뚤었고,
색은 늘 넘쳤으며,
종이는 깨끗하게 끝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내 그림을 평가하지 않으셨다.
“잘 그렸다”는 말도,
“고쳐야 한다”는 말도 하지 않으셨다.
대신 내가 그린 모든 종이를
조용히 모아두셨다.
유치한 그림도 있었고,
미완성으로 망쳐버린 그림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찢어버리고 싶었던 종이들까지
어머니는 하나도 버리지 않으셨다.
“이것도 다 네 생각이잖아.”
그 말 한마디로
내가 끄적인 모든 것은
이미 충분히 소중한 것이 되었다.
미술학원을 어릴 때부터 다녔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무엇을 그렸니?”라고 묻지 않으셨다.
무엇을 배웠는지,
얼마나 잘 그렸는지,
다른 아이보다 앞서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보이셨다.
그저
오늘도 내가 그리고 왔다는 사실,
연필을 쥐고
내 시간과 생각을 사용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기셨다.
그래서 나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증명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그림 앞에서
누군가의 기대를 대신 그리지 않아도 되었다.
어린이가 어른처럼
완벽하게 잘 그린 그림에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어른의 옷을 입고,
어른의 색시댄스를 추며,
진한 화장을 한 어린아이처럼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사고는
단번에 자라지 않는다.
사용하는 만큼 천천히 자라고,
기다려주는 만큼 깊어지며,
믿어주는 만큼 넓어진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림을 통해
기술보다 먼저
‘말해도 된다는 감각’을 배웠다.
틀려도 괜찮고,
미완성이어도 괜찮으며,
유치해 보여도
그 생각을 끝까지 남겨도 된다는 것.
그 믿음 덕분에
나는 그림 속에서뿐 아니라
삶에서도
조심스럽게나마
내 목소리를 내는 어른이 되었다.
아마도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은
잘 그리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끝까지 그려볼 수 있도록
곁에서 믿어주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