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술대회에 내보내지 않습니다

by 김진경

나는 미술대회에 내보내지 않습니다


미술을 가르치다 보면 “왜 대회는 안 나가요?”

하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경험 삼아 한 번쯤은 괜찮지 않냐고들 합니다.

부모님들 요청으로 나가본적도 있지만 최근 들어 더욱 확신이 듭니다. 아이들도, 성인도 감정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적인 판단에 가깝습니다.


한때 공모전은 작가가 되는 거의 유일한 문이었습니다.

그 상징이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국전이었습니다.

국전은 통과의례였고, 국가가 부여하는 일종의 자격처럼 작동했습니다.

그런데 그 제도는 2000년을 끝으로 사라졌습니다.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더 이상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미술대회는 많습니다. 어린이 대회부터 청소년, 성인 공모전까지 해마다 수십 개씩 열립니다.

그런데 정작 작업을 지속하는 작가들 사이에서 공모전은 커리어의 중심이 아닙니다.


최근 몇 년간 전시 제안을 받거나 레지던시에 선정된 작가들 프로필을 보면

공모전 수상 이력은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줄이 있으면 ‘아직도 저런 걸 쓰나’ 싶은 느낌이 듭니다.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공모전 이력은 이제 쓰지 않는 게 암묵적인 룰처럼 굳어졌습니다.


대신 어떤 프로젝트를 했는지, 어떤 전시에 참여했는지가 주를 이룹니다.

이력을 쓰는 문법 자체가 바뀐 것입니다.


요즘 작가가 큐레이터를 만날 때 가장 먼저 받는 질문은

“최근 몇 년간 어떤 작업을 해왔나요?” “이 작업은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나요?“입니다.


그 자리에서 “어느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습니다”라는 말은 대화를 이어주지 못합니다.

상은 결과일 뿐, 작업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진짜 가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건 아마추어 경연대회 수상이 아니라

자기 목소리를 오래 훈련하고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설명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미술도 다르지 않습니다.


작가들이 공모전에서 멀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미술을 평가하는가’라는 질문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미술대회는 심사위원 명단을 공개하지만,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판단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완성도인지, 동시대성인지, 실험성인지, 아니면 개인의 미적 취향인지.

그 기준은 작품 앞에서 작동하지만 언어로 검증되지는 않습니다.


이 구조에서 작가는 왜 선택되었는지, 왜 탈락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평가는 존재하지만 평가의 근거는 남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시간 문제입니다.

공모전 준비에 드는 시간과 에너지는 적지 않습니다.

출품 규격에 맞추고, 심사에 유리할 법한 형식으로 화면을 조정합니다.

그런데 그 시간은 작업의 서사나 포트폴리오로 거의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 작가들은 같은 시간을 차라리 하나의 기획전, 하나의 리서치, 하나의 레지던시에 씁니다.

상은 남지 않아도 작업의 맥락은 남고, 다음 제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생깁니다.


무엇보다 공모전은 작업을 너무 이른 시기에 고정시킵니다.

질문을 견디는 작업보다 한눈에 이해되는 작업이 유리해지고, 실험은 위험한 선택이 됩니다.


이건 아역배우가 어른이 되어서도 어릴 때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린 시절 한 역할로 큰 성공을 거두면 그 이미지가 오히려 배우로서의 성장을 가로막습니다.


미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스타일이나 소재로 상을 받으면 자신을 ‘그 작업을 하는 작가’로 고정시킵니다.

“나는 동물 그리는 사람” “나는 수채화 하는 사람”


작가 강형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작가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사조를 만드는 것,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말한 것입니다.


이런 정체성이 일찍 굳어지면 나중에 다른 질문, 다른 방식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워집니다.


미술대회에 내보내지 않는 건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금 미술계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에 맞춰 더 오래 가는 이력을 쌓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김진경

(주)프리덤아트스페이스 대표이사

나스컨템포러리갤러리 대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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