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욕심은 늘 일을 키웠다.

은퇴 후 삶을 그려본다

by 김진경

내 욕심은 늘 일을 키웠다.

아이디어가 생기면 멈추지 못했고, 가능성이 보이면 일단 벌려 놓았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고생한 사람은 언제나 남편이었다. 나는 앞을 보며 달렸고, 그는 뒤에서 무너질 것을 막았다. 그 사실을 모른 척하며 살아온 건 아니지만, 충분히 고맙다고 말하지도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요즘 우리는 장기적인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일을 줄이는 문제, 조기 은퇴 이후의 삶,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에 대해. 더 잘되기 위한 계획이 아니라, 이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예전에는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이 먼저 왔는데, 요즘은 이상하게도 조용해진다. 충분히 애써왔다는 확신 때문일까.


우리는 둘 다 미술과는 조금 거리를 두자고 이야기했다. 더 이상 업으로서의 미술, 증명해야 하는 미술 말고, 내려놓아도 괜찮은 미술 말이다. 제주도에 작은 집 하나 두고,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우며 살아도 좋겠다고 했다. 큰 계획도, 성취도 없이 하루의 빛과 바람을 느끼며 사는 삶. 예전의 나였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이야기다.


이 선택이 미련이나 체념은 아니다. 오히려 완주에 가깝다. 둘 다 정말 열심히 살았고, 그래서 후회 없이 물러날 수 있다고 믿는다. 미술은 젊은 누군가가, 우리보다 더 좋은 감각과 에너지로 이어갈 것이다. 우리는 잠시 먼저 걸어왔을 뿐, 끝까지 붙잡아야 할 이유는 없다.


어쩌면 지금 나는 성공 이후의 삶이 아니라, 충분히 살아낸 사람의 다음 장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 많이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더 이상 확장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 조용한 장면을 남편과 함께 그려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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