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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탐구 Mar 24. 2017

기타를 통해 만난 사람들 (1)

Shecter Hollywood Custom

까치산역이라면 익숙한 곳이다.
열둘부터 스물넷.
십이년을 살았던 곳이기에 그 곳 분위기는 익숙하다. 70년대 지어졌던 단독주택은 거진 다 허물렸고 빌라들로 가득하다. 여기저기 직선아닌 골목길로 연결되고 평지를 기대할 수 없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곳이다. 골목 어귀에서 고개를 들어 올려보면 바라던 하늘은 안보이고 실타래처럼 뭉친 검은색 전선이 전신주에 힘겹게 의지해있곤 했다.

이상하리만큼 술집이 많고 의뭉스럽게도 음악하는 사람들이 이 곳에 적잖히 모여있었다. 과거 대표적인 서울의 빈민촌인 신월동(새로운 달동네)에 인접한 화곡동(벼 계곡)이니 동네이름을 풀어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까치산역 4번 출구를 나와 50m 쯤 걷다 좌회전해서 쭉 올라오세요"

그렇게 안내받은대로 서둘러 걸어가고 있었다. 강남에서 회사를 마치고 서둘러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의 전화목소리는 이십대 초반같았다. 그는 한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했고 오후 6시에 출근한다고 했다. 손님들이 많아지는 8시 이전에는 도착해야한다고 내게 신신당부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등판에 옷이 쩍 딸라붙을만큼 제법 경사가 있는 언덕을 5분 정도 오른 후에 그가 일하는 주점에 도착했다. 이자카야였다.

의외였다. 그는 나와 비슷한 서른 초반처럼 보였고 말투나 몸짓도 그러했다. 친구가 운영하는 이자카야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다며 짧게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는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갔다.

구석에서 조금 낡은 하드케이스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케이스 잠금쇠를 풀고 기타를 꺼내주었다. 나 역시 난생처음 보는 사람과 말섞는 일은 여전히 불편하고 익숙치 않기에 우선 기타를 살펴봤다.


쉑터 Shecter. 80-90년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기타였다. 할리우드 커스텀. 모델명은 할리우드 커스텀이었다. 딱봐도 정규라인업은 아니었고 누군가에 의해 주문생산된 기타였다.

상태는 안 좋았다. 볼륨노브도 헐렁했고 톤노브는 아예 빠져있었다. 일부 부속도 없는 상태였다. 설명에는 없던 상처도 여기저기 있었다.

나는 조금 탐탐치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는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제가 일본에 있을때 선물받은 기타에요.
 OOOO OOO라고 검색해보면 네이버에도 나올거에요. 그 분한테 선물받은 거라 원래 팔면 안되는건데 사정이 급해서 파는거에요."

사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래서 그닥 귀담아 듣진 않았다. 그가 친절히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검색결과를 보여주는데 백발의 일본가요, 영화음악 프로듀서로 유명한 사람인듯 했다. 올해 그가 타계했다는 기사도 보였다.

갑자기 내 앞의 기타가 내 호기심의 대상에서 누군가의 유품으로 변한 상황이었다. 물론 그가 거짓말을 할수 있다고도 잠시 생각했다. 내 표정을 읽고 내가 거절 못할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이제 더 이상 음악 안하게 돼서 이젠 필요없어서 팔아요. 빨리 팔려고요. 그래야 마음도 잡힐 것 같아서... 이런 상처가 있는걸 저도 몰랐네요. 미리 말씀 안드린건 죄송해요"

하드케이스에 붙어있던 십수개의 비행수화물 스티커가 눈에 띄었다. 이미 누렇게 변색된 수화물스티커는 낡은 하드케이스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기타값을 이체하면서 수화물 스티커 속의 이름이 그의 이름과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혹시... 다시 필요하게되면 연락주세요. 깨끗하게 치고 있을게요. 잘 쓸게요" 이렇게 인사를 남기고 나왔다.

Schecter Hollywood Custom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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