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기억 그 이상을 이어준다
기록은 기억 그 이상을 이어준다.
짧은 순간이지만 기록하면 추억이 되고, 지우지 않는 한 영원히 남는다. SNS처럼 다양한 공간에 사진과 함께 짧은 글을 남기는 일은 생의 유한함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일이다. 인터넷은 우리의 삶을 실상에서 허상까지 이어준다. 실제 모습보다 더 멋지고, 근사하게 포장되는 것은 덤이다. 짧은 글로 많은 이들에게 힘을 주는 선한 이들이 많다. 재치 있는 말로 지치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이들에게 시원한 사이다 같은 청량함을 안겨주는 문장도 자주 보인다. 지금도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휴대폰에 시선을 떨구는 사람들이 많을 테다.
길지 않은 문구 속에서 많은 이들이 위로를 받는다. 위로는 짧은 순간이나마 완벽히 타인이 되는 순간임을 고려하면 SNS의 글은 그 역할에 충실하다. 가까이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는 것도 위로가 될 테지만, 자칫 어설픈 위로로 오히려 나를 밀어내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그저 말없이 바라보며 손이라도 잡는다면 차라리 나을 텐데. 이도 저도 어렵다면 메모 한 장이라도 남겨 감정의 폭풍이 삭여지기를 기다리는 자세도 필요하다. 조용히 때를 기다린 후 짧은 글 한 문장이라도 남긴다면 상대는 그 사람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풍경은 문장으로 기억된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을 보면 여지없이 SNS에 흔적이 남는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어딘가 낯선 곳에 닿으면 가장 먼저 눈과 마음에 풍경을 담는다. 이후 사진과 간단한 메모를 남겨 오래 기억하도록 기록의 노트를 펼친다. 예전엔 수첩에 펜으로 기록했는데 이젠 휴대전화기의 메모장을 자주 이용한다. 짧은 문장으로 모든 감정을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기에 결국 생각의 정리와 글 마무리는 종이에 의존한다.
글이란 가슴으로 낳은 언어의 조각이자 향기가 모여 읽는 이의 마음에 닿는 일이다. 한 글자씩 정성스럽게 새겨나간다면 누군가 반드시 읽고, 반응을 남길 테다. 내가 써 놓은 글자 위에 타인의 손금과 눈길이 나란히 마주한 순간 공명이 일며 공감의 파도는 밀려온다. SNS가 주는 가장 큰 장점이 실시간 이어지는 호감도 표시다. 공감의 여부는 단순히 <좋아요> 개수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젠 몇 사람이 읽었는지도 통계로 보여주고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이처럼 글을 쓰면 타인의 반응을 쉽게 알 수 있다. 여행하면서 즐거웠던 마음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기억을 되살리며 행복해진다. 가슴으로 낳은 글은 읽는 이가 가장 먼저 아는 법이며, 한 줄기 빛으로 남아 오래도록 기억된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일, 순간의 풍경을 영원히 남기는 일이다.
단어가 가난한 세상에 살다.
얼마 전 청소년의 언어 사용에 문제가 많다는 기사를 접한 적 있다. 비속어, 외래어, 신조어의 남용으로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이 사라짐을 아쉬워한 기사였고, 애석하지만 가냘픈 한숨과 함께 이에 공감하는 바다. 특히 비속어 사용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 같은데 대책이 없을까 고민해보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디스플레이에 익숙한 세대인 만큼 이를 잘만 활용한다면 오히려 실보다 득이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 정서에 유익한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만들어 교육 현장에 활용한다면 좋을 것도 같은데, 우리나라 교육은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 어른이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삶은 풍족하지만, 단어는 가난해진 듯해 씁쓸하다.
기억하고픈 단어를 만나면 곧바로 메모를 남긴다. 최근에 <나비물>이란 단어를 만났는데 그 뜻이 어찌나 곱던지. 세숫대야로 세수를 하던 시절, 마당의 먼지도 잠재울 겸 해서 끼얹던 물, 이때 공중으로 번지는 물 모양이 나비의 고운 날개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나비가 붙는 말은 대체로 나비의 사뿐한 날갯짓이나 날개 모양을 연상시킨다. <나비잠>도 발견했는데, 그 뜻을 알고 보니 놀랍게도 내 잠버릇일 줄이야. 나는 잠을 잘 때 두 팔을 위로 올려 만세를 부르면서 자주 잠든다. 갓난아이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잠이 나비잠인데 내 잠버릇과 같다. 아내가 자세를 바꾸라는데 잘 안 된다.
글로 다독이며 나를 위로한다.
기억의 한계가 기록의 중요성을 부각하게 만든다. 작은 씨앗으로 열매를 상상할 힘을 가졌다면 작가로서 손색이 없는 자질을 타고난 사람이다. 지금은 그런 경우가 드문데 예전에는 수박을 먹고 난 후 밭에 씨를 뿌려두면 커다란 수박이 간혹 달리곤 했던 기억이 있다. 약을 제대로 쓰지 않은 탓인지 채 익기도 전에 벌레들의 만찬이 되곤 했지만 자라나는 수박을 바라보면서 어찌나 자주 입맛을 다셨던지. 아마 유능한 농사꾼이었다면 시기에 맞게 김을 매고 병충해를 방지해서 어쩌면 커다란 수박을 여러 개 생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박을 키워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과 사람을 잇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개인적 의견으로 으뜸은 글쓰기가 아닐까 싶다. 서재에 앉아 글을 쓰는 이 순간,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내 글을 누군가 읽을 것이라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기록은 단순히 한 사건에 대한 사실 묘사를 넘어 그 이상과 연결해주며 순간의 풍경조차도 영원한 기억으로 남게 한다. 신문 지상에서 단어가 가난한 세상에 살고 있음을 한탄했지만, 해마다 펼쳐지는 신춘문예나 각종 문예지의 문학 등단 작품을 보면 아직은 우리 말이 풍성하고 여전히 많은 기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글로 나를 다독이며 위로하듯이, 한 편의 글을 써 봄으로써 가지게 되는 삶의 따끈한 위로를 직접 체험해보기를 희망한다.
Written By The 한결
2021.03.08 대한민국 남해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