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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한결 Mar 29. 2021

지난 시절의 나와 마주한다

모든 게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어디든 두려운 존재는 있다.


산촌이 아닌 농촌 중에서 평야가 아닌 산을 병풍처럼 두른 마을이 있다. 산 중턱에는 저수지가 있고 그 아래로 다닥다닥 붙은 논과 밭이 장관이다. 논과 밭이 언덕져 계단을 이룬 형태를 다랑논 또는 다랭이라 한다. 저수지 물이 한정되어 순서대로 물길을 내 농사를 짓던 고향 마을이 그렇다. 이곳 남해군에도 여러 군데 있지만, 두모 마을과 가천 다랭이 마을이 대중에게 익숙하다. 고향 마을도 남해군 다랑논만큼 규모가 크고,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모습이 멋지다. 특히 자주 오가다 마주쳤던 두려운 존재와의 숨 막히는 대결이 이루어진 외길 다랑논은 지금도 가끔 꿈에 보인다.


열 살 전후해서 온갖 심부름을 도맡아 했던 시골 아이에게 논과 밭을 가로지르고 계곡을 건너는 일은 흔하다. 계곡 사이에 물이 흐르고 그 좌우로 다랑논이 존재하는데, 불행하게도 부모님께서 일하고 계신 우리 논은 계곡 건너에 있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주전자로 받아서 가는 길에 냇가 바로 앞 논둑 길에서 무언가 눈에 들어온다. 논과 논 사이의 경계를 논둑 또는 논둑 길이라 일컫는데, 건너편 다랑논으로 가려면 반드시 냇가를 지나야 한다. 냇가와 바로 연결된 다랑논의 논둑 길은 유일한 통로로 짧고 논두렁 폭이 넓어 건너기가 좋다. 하지만 의외의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으니, 길고 날렵한 몸으로 소리 없이 논둑을 가로막은 뱀이다. 오후 따스한 햇볕에 몸을 말리고 있는 녀석과 한판 대결을 시작한다.


모든 게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어린 마음에 폴짝 뛰어넘으면 별일 없겠지 싶다. 하지만 마음은 벌써 열 번도 더 뛰어넘었건만, 실제로는 처음 그 자리에 말뚝이 되어 서 있다. 어찌해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흐르고, 머리 위의 해는 어깨 너머 점점 서쪽으로 간다. 늦으면 야단맞을까 슬슬 겁이 나지만, 여전히 녀석의 여유로운 모습은 나를 옥죄어 온다. 몸은 굳은 지 오래고 그저 한숨만 늘어난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돌 하나를 주워 던져보지만, 녀석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녀석은 단잠에 빠져 있었을 테지. 나를 무시한 게 아니라 단지 잠들어있었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는 나는 그저 녀석이 미울 뿐이다.


지금처럼 휴대전화기라도 있었다면 부모님을 불렀을 텐데 이도 저도 못 하고 그저 두근거리는 가슴만 부여잡고 쩔쩔매는 모습이라니. 다행히 등산객 몇이 나타나서 막대기로 치워버렸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논둑 위에서 하루를 다 보낼 뻔했던 아찔한 기억. 지금도 그때의 기억으로 뱀 비슷한 무언가를 길가에서 마주하면 멀리 도망간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은 기본이고, 맥박이 곤두박질치며 호흡마저 곤란해지는 증상을 겪는다. 내 삶의 과정에 가장 두렵고 징그러운 존재 중 하나로 자리한 지 오래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두렵다.


20대 중반이 되기까지 시골에서 살아온 나에게 어두운 밤하늘과 밤길은 익숙하다. 캄캄해질수록 더욱 밝아지는 별과 달을 벗 삼아 논둑 길을 걸어 다닌 적이 있는데, 봄에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지천이라 무서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산을 병풍처럼 두른 고향마을이 온통 다랑논과 밭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모내기가 끝난 시점엔 사람의 발걸음 소리보다 개구리 뛰어다니는 물 첨벙 소리가 더 크다. 개구리 소리가 어찌나 크고 요란한지 겪어본 사람은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추억을 선물한다. 시골 논에서 개굴개굴 울어대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참개구리다. 요즘은 황소개구리가 늘어나 구성진 저음으로 밤의 여유로움을 앗아가는 것도 흔하다. 개굴개굴하는 요란한 참개구리의 합창을 일순 고요한 적막으로 바꾸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달이 없는 그믐에는 손전등에 의지해 논둑 길을 걷는다. 그러다 마주치는 논둑 길에 떨어진 무언가는 잠시나마 나를 주춤거리게 한다. 어릴 적 뱀이라는 녀석과 단판을 벌인 이후로 여전히 두려운 기억으로 존재하는 논둑 길은 따스한 느낌과 서늘한 공포감을 함께 지닌 존재다.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남은 논둑 길이지만, 여전히 도전은 이어지고 지금도 두려운 마음을 어깨에 걸치고 한 걸음씩 다녀보곤 한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작대기 하나는 항상 준비하고 다니지만.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두렵다는 것은 극복해야 할 과제가 하나씩 늘었음을 의미한다. 언젠가는 이 공포감도 극복하리라 믿는다.


지난 시절의 나와 마주한다.


기억에 머문 모든 풍경이 정겨운 것은 아니다. 시리고 아픈 추억이 된 장면이 많은데 이 모든 게 어린 산골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결과일 테다. 어른이 된 지금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면서 내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고향 덕분이 아닐까 싶다. 아침이면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자연과 호흡하며, 자연이 베푸는 넉넉한 먹거리에 배를 불리며 나아가 삶의 종착역도 결국 자연임을 일깨워준 것이 바로 고향이 아니던가. 봄이면 지천에 나물이 가득해 밥상 가득 풍성함을 안겨주고, 가을이면 야물게 익은 벼와 각종 농작물로 너나 할 것 없이 배부르게 먹던 시절도 있었으니. 가난했지만 그 안에 녹은 풍경은 여유롭고 넉넉하다.


모처럼 남해군 가천 다랭이 마을에 들러 옛 추억에 젖는다. 내 고향 만수도 지금쯤 봄기운에 바쁜 시절을 보내고 있겠지. 고향과 멀어지면 향수와 가까워지는 것을 체감하면서 어른이 된다는 건 시간에 서서히 스며드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좋든 싫든 살아낸 모든 기억을 아름답게 추억하는 것도 사고의 영역이 확장한 결과이고, 이는 어른이 되어 느끼는 가장 큰 만족감이다. 삶이 팍팍해지고 사람끼리 마주함이 줄어드는 요즘, 이럴 때일수록 넓은 자연의 품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도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지혜다.



Written By The 한결

2021.03.29 대한민국 남해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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