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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호 Jun 02. 2022

에스프레소와 달달한 페이스트리의 케미를 만나러 갈 시간

햇반 덥히는 데 많이 사용하는 전자레인지는 원래 한 미국인 엔지니어가 레이더 장비로 어떤 작업을 하던 중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 둔 초콜릿이 부자연스럽게 빨리 녹아내린 점을 이상하게 보고 연구를 해 훗날 전자레인지를 발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만일 그 엔지니어가 초콜릿 덕후가 아니었다면 지금 어땠을까 싶다.


만인이 좋아하는 초콜릿 칩 쿠키도 우연하게 탄생한 임기응변의 산물이라고 한다. 미국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이 원래 초코파우더를 넣어 만든 쿠키를 서비스하던 중 쿠키 반죽이 떨어지자 한 직원이 급하게 옆에 있던 초콜릿 조각을 반죽 위에 얹어 구워봤는데 완성된 쿠키 맛에 고객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서 초콜릿 칩 쿠키를 계속 서비스하다가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만일 휴게소 식당 직원의 임기응변이 없었다면 지금 어땠을까 싶다.


초콜릿 칩 쿠키가 세상에 나온 방식처럼 아침 식탁의 콘 플레이크, 감자 칩, 아이스크림 콘, 구운 라비올리, 데니쉬 페이스트리의 탄생에도 우연과 사람들의 실수가 모두 겹쳐 있다고 한다.


데니쉬 페이스트리는 원래 프랑스의 한 견습 제빵사가 밀가루 반죽에 버터 넣는 것을 깜박하고는 어떻게든 뒷수습을 해보려고 이미 만들어진 반죽에 버터 덩어리를 다시 넣어 보게 되면서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 방식의 반죽으로 구운 빵들이 인기를 얻자 반죽법이 이탈리아를 거쳐 오스트리아까지 전해지게 된 것이다. 

대전 성심당 16겹 과일 데니쉬.. 복숭아와  블루베리 두 종류가 있다. 첫맛은 달달하지만 많이 달지 않고 여러 겹의 레이어가 만드는 식감은 환상적이지만 편안하고 익숙하다.

그러던 훗날 덴마크의 한 제과점에서 제빵사들이 장기간 파업을 하게 되자 오스트리아 제빵사들을 대체 인력으로 고용하게 되면서 데니쉬 페이스트리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훗날 세상에도 그렇게 알려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만일 프랑스의 견습 제빵사가 엉뚱한 시도를 해보지 않았다면 지금 어땠을까 싶다.


세상엔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이 적지 않다. 우연함은 다크호스의 승리나 빗맞은 안타 같은 것들이지만, 그 안에는 호기심, 용기, 담대함, 끊임없는 시도, 위임과 포용 등 여러 인자가 함께 담겨 있다. 우연히 태어나게 된 데니쉬 페이스트리도 일종의 빗맞은 결승타인 셈이지만 정서지능 렌즈로 보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  


(오스트리아 페이스트리이기도 한) 데니쉬 페이스트리 얘기를 하다 보니 오래 전의 오스트리아 출장들이 생각난다. 시차와 긴 회의로 잠과 출출함이 동시에 몰려올 때면 가끔은 현지인들처럼 쓰디쓴 에스프레소와 사과나 베리가 듬뿍 얹어진 달달한 페이스트리 케미로 몽롱한 출출함을 버텨내곤 했었던 것 같다. 여러 겹의 레이어가 만드는 그때의 그 바삭한 식감은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인 것처럼 느낌이 생생하다.


일부 전문가들이 코로나19의 재유행을 여전히 경고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면 모임들이 다시 재개되는 분위기다. 내가 직접 가지는 않지만 9월에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한 국제 콘퍼런스에 국내 사람들이 가는 방안을 요즘 자주 이야기하는데, 종종 내가 어느새 비엔나의 한 카페에 가 앉아 있는 딴생각을 하게 된다. 올 가을쯤엔 나도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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