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d, 2nd LP [BOMM]
우울은 고통에 비해 대중적인 감정이다. 우울이 가져오는 수 많은 부가적인 감정은 주체할 수 없는 더 큰 우울을 가져온다. 모든 것이 맞춘 듯이 생동하는 봄에 멈추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를 스프링 피크(Spring Peak)라고 한다. 격정적으로 봄이라는 계절을 축하하는 모습이 자신의 현재와는 반대로 흘러간다는 생각에 우울감이 휩싸이고, 비로소 봄의 움직임과는 반대로 움직이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게 봄은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살아나고, 죽어가고, 죽어나는 계절이다. 오늘 이야기하게 될 앨범은 힙합 레이블 '하이라이트 레코즈'의 해체 후 첫 정규활동작으로 발매한 JERD의 [BOMM]. 10곡의 트랙 속에서 봄을 보내며 맞이하는 우울의 감각을 적어낸 앨범이다.
*ARIA
앨범의 시작은 앨범 소개 속에서 말하는 '우울' 과는 다르게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가 샘플링되어 흘러 나온다. 해당 연주곡은 대중적인 연주곡이지만, 2022년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이라는 곡으로 샘플링되어, 국내 케이팝을 청취하는 혹은 대중음악을 청취하는 사람들에게는 봄의 시작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연주로 인식이 되어 있다. 하지만 Jerd는 수려한 연주 속에서 우울의 감각적인 묘사를 이어 나간다. 무언가를 위해 나아갔던 나날들이 인생에서 큰 변화도, 큰 호응도 없이 흘러가는 것들에 대해서 말한다. 특히 '책임감' , '보상'과 같은 결과를 암시하는 단어선택이 곡의 제목인 'ARIA'는 '선율, 음의 흐름'을 뜻하며 곡의 첫단어인 '선상', '어떤 상태에 있음'과 함께 연결되는 지점이다. 자신이 나아가는 길 위에서 '결과를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은 상태' 이자, 봄의 시작과 다르게, 봄보다 늦게(혹은 나타나지 못할 수도 있는) 결과에 대해 불안정한 감정을 말하고 있다. 평화로운 선율과 봄을 맞이하는 시간과는 다르게 아직 피어나지 못한 자신을 말하고 있다. 자신을 비하하는 자기혐오적인 표현없이 솔직하게 풀어낸 첫 트랙은 샘플링 연주곡이 우울을 더 가중시키는 효과가 드러난다.
*Bridal Shower
이 곡의, 이 앨범이 주로 뜻하는 '우울'을 내면적으로 잘 표현한 트랙이라 할 수 있다. 가사는 시종일관 수동적인 태도를 가진 자신을 보여주고 있다. '-주세요.' '머물러 있고' '여전히' '변화는 없겠지' 라는 가사는 우울 속에서 가장 구속된 자신을 표현하는 촘촘한 매력을 보여준다. 자신은 늘 나 자신과 싸운다곤 하지만, 자신을 제외한 모두에게 수동적인 모습과 정체된 모습을 보여준다. Jerd는 지속적으로 감정상태와 봄을 비교한다. 해당 곡에서 보여지는 모습과 '봄은 너무도 빨라'와 같은 표현이 상응하며, 자신의 우울이 더욱 깊게 표현되기 시작한다. 또한 곡 제목의 'Bridal Shower'는 결혼 전에 하는 의식과 같아, 결혼을 하는 신부에 대한 우정의 증명, 축하와 같은 의미를 담는 것과 반대로 흘러가는 가사는 앨범의 설득력을 충분히 더해가고 있는 중이다.
*X됐어
앨범은 3번째 트랙으로 향하고 있고, 봄을 상징하는 듯 한 곡의 샘플링과 축하하는 순간을 지나 도발적인 제목을 지닌 트랙으로 지나가고 있다. 앨범의 제목에 걸맞게 계속해서 '봄(BOMM)'을 중심 배경으로 풀어내고 있으며, 봄에 대한 시각도 변화가 되고 있다. 봄에 대한 변화를 맞이하며 시기하는 듯 자신의 상태를 연민하다가도, 봄의 속도를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해당 트랙은 본격적으로 봄을 시간으로 치환하기 시작했다. 즉, 봄이 주는 우울이 아닌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에 대한 연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처럼 표현이 되기 시작한 지점이다. 앨범은 봄을 원망하는 것이 아닌 봄의 시작이 자신에게 주는 감정을 어떻게 기록했는지 말해준다.
*Blondie
'사람보단 사랑을 봤지 둘 다 불완전하니까 이겨낼 거라고 믿은 난 uh 어쩌면 오답이었나 huh 어쩌면 오만이었나 하면서도 내 마음은 날 시험에 들게 하니까 이건 어쩌면 선택할 수 없던 거였어 이미 저점인걸 많은 걸 얻으려다 무너져봤는걸 난 찾는 거 전문인걸' 와 같은 수려한 가사의 구성으로 구체적인 상황제시가 없어도 감정을 성공적으로 표현하는 인상적인 곡이다.
*각설 *홍시
앨범에서 유기성이 의도된 트랙이다. 각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홍시의 비트가 나오며 연결이 암시된 트랙은 그와 다르게 상반된 시선을 풀어낸다. 각설은 자아성찰에 가까운 가사를 풀어내며, 자신이 느낀 회의적인 감정과 상황에 대해서 맞이하며 느낀 감정을 '각설이'로 빗대어 다시 돌아오는 순환적인 구조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홍시는 반대로 본격적인 회의적인 자세로 들어선다. 혹은 반항적인 모습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자신을 홍시에 빗대었다는 점은 각설과 동일하게 비유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비유를 통한 자신의 결론이 순응과 반항이라는 점에서 서로 새롭게 결과를 말한다. 이는 외적으로는 자신을 비유하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풀어가는 과정에서의 감정적인 변화가 오히려 감정 기복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트랙이다. 각설에서 순응했다면, 홍시에서 반항하고, 각설이 앨범에서 가장 침체된 것 같다면, 홍시에서는 앨범에서 가장 반항적인 모습을 보인다.
*BOMM
회의적인 내면이 가장 촘촘하게 적혀진 트랙. 그동안 진행되었던 감정에 대한 포착과 다르게 타인의 시선이 합류되어 나오는 회의적인 모습이 인상적인 트랙. '선생님은 내게 말했지 어떻게 원인을 잘 아니' 나 '우울을 끝내는 게 숙제지 등잔 밑을 한번 좀 볼래 봄처럼 왔다 가는 게 우울이고 나인 거야 모르면 좀 외우고 써둬' 와 같은 가사들은 가장 직접적으로 자신에 향해 있는 평가들을 가감없이 풀어내었다고 생각한다. 앨범은 진행되면서 '우울'에 대한 다각적인 묘사가 이루어지는데 그것이 감정의 동요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이 아닌 내외적으로 풀어진 현상들을 촘촘하게 다루는 것을 알게되는 곡들이다.
앨범은 전체적으로 다양한 프로덕션과 현실적이면서 과도하게 구체적이지 않은 가사가 인상적이다. '비처럼 음악처럼'과 같은 정통 발라드를 재해석하면서도, '영업안합니다'와 같은 붐뱁과 퐁크(Phonk)적인 기법으로 다양한 시도를 한 흔적이 있다. 가사 역시 질병의 색깔이 짙은 감정을 현실적으로 풀어내지만 아티스트로서의 고뇌가 아닌, 인간으로 우울과 봄이 동시에 선사하는 감정 속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모습이다. 앨범 속에 기록된 자신은 머리를 바꾸거나, 한 번은 강하게 반항하거나 하지만 앨범의 마지막 트랙 'VANS'에서 자신의 감정을 정돈하며 성찰하는 모습을 한껏 보여주면 자신의 감정을 마무리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첫번째 트랙의 무기력하고 우울한 모습과는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마음에 멍든 듯해' 와 같은 성찰적인 가사로 우울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구체적인 우울의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봄으로부터 왔는지, 우울 중에 봄이 왔는지 불분명하지만, 봄이 되어서 가지게 되는 심오한 우울인 것은 분명했다. 분명 우울은 본 앨범의 소개글처럼 누구나 한 번씩 찾아오는 감정일 것이다. 봄처럼 갑자기 왔다가 나도 모르게 가버리는 감정이지만, 우리는 우울에 봄을 탓한 적이 없다. 봄에도 생동하지 못한 자신을 탓할 뿐이다. 앨범이 '자신의 우울했던 기억을 털어낸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가사들이 뜻하는 바는 결국 자신에게 인상적인 우울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 아파하고, 우울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머리를 바꾸거나, 스스로를 끊임 없이 원망하고, 돌아보는 자신을 오랫동안 어루만지지 못했던 기억을 길게 적었다. 봄은 몇개월이지만 10곡의 짧은 순간으로 봄을 보내는 것은, 아마도 자신도 모르게 커버린 기억처럼, 성숙해져간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울은 누구에게나 온다고 당연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성장하고 성숙해진 다는 것은 자신을 충분히 돌아보고 나아가겠다는 희망을 다시 잡게 된 것이다. Jerd에게도, 누군가에게도 우울은 언제나 다시 찾아오겠지만 고열로 끝났던 고통이, 다음엔 기침으로만 지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