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넬 Jul 25. 2023

청춘의 결말

빈지노 2집 <NOWITZKI>의 가사를 중심으로

 힙합에서 청춘을 뱉는 사람을 꼽는다면, 몇 년이 지났어도 빈지노의 '24:26'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재지팩트 시절의 'Life's Like' 역시 빈지노의 청춘이 현실적으로 녹아들어있다. 사람들은 청춘에 대해서 낭만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청춘을 말하는 시절은 영원히 늙지 않는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생애에서 빠질 수 없는 이 루틴을 빈지노가 가장 원초적이고 '쿨'하게 적어놓았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도 한 장르의 역사 속에서 빠질 수 없는 트로피가 되어버린 이 앨범들은 빈지노의 커리어에서 '호시절'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NOWITZKI>가 발매가 되었음에도 이 의견에 대한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 사람들도 존재하며, 많은 리스너들의 반응이 일치되지 않아 호불호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감히 이 앨범이 담고 있는 빈지노의 가사만큼은 국내 힙합 속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빈지노의 커리어를 간단하게 흝어보자. P'SKOOL, IK, Hotclip, Jazzyfact 시절을 거쳐 일리네어 레코즈 시절 '24 : 26'를 발매한 빈지노는 청춘을 말하지만 무겁지 않았다. 자신의 삶에 문제를 찾고 해답을 찾는 결과론적인 해답을 원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본능에 제한을 두지 않고, 이리저리 뱉는 자신의 가사들은 오히려 모여있을 때 가장 정돈된 '청춘'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이성에 대해 표현하거나, '진절머리'처럼 자신의 고뇌를 추상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시각적인 표현에 힘을 주었다. 전체적으로 시각적인 표현이 우선적으로 드러나며 시선의 흐름으로 일어나는 가사의 흐름은 어쩌면 '청춘'을 표적으로 잡고 음악은 만든 것이 아닌, 일상을 적은 후 멀리서 보았을 때 청춘으로 달려가는 모양새처럼 보였던 것이다. 


 극찬을 받은 EP를 등에 엎고, 수 년의 시간이 지난 후 발매된 빈지노의 1집 <12>은 발매 직후에는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현재로서 이 앨범이 가진 가치를 인정하는 반응이 더욱 많아졌다. 시침과 분침을 닮은 앨범커버와 자신의 과거를 시간여행하는 1번 트랙을 보아 알 수 있는, 현재를 담고 있던 전작과 달리, <12> 한층 더 가볍게 과거를 담으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담고 있다. 여전히 개인적인 상황을 그림처럼 담은 그의 작사는 친절하다고 생각할 만큼 전달력이 뛰어났으며, 앨범 전체적으로 아티스트가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를 충분히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1번 트랙의 시간'여행'과 11번 트랙의 '여행'이 담고 있는 실질적인 의미차이, 그리고 트랙에 진행됨에 따라 변화된 과정과 상황의 차이가 그의 앨범에서 굳이, 직접적으로 '내가 이렇게 살아왔다.' 라고 어필하지 않음에도, 그가 당시에도, 지금에도 힙합씬의 아이콘인 이유를 직간접적으로 알려주는 듯 하였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살고있는 대부분의 남자가 그렇듯, 병역의 의무를 보낸 후, 새로운 회사와 새로운 앨범을 예고한 빈지노는 2집 <NOWITZKI>를 발매하였다. 긴 공백의 시간 동안 빈지노는 군 복무의 시간 외에도, 스테파니 미초바와의 약혼 등 대중들도 인식한 여러가지 이벤트가 존재하였다.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변화된 삶 속에서 아티스트의 가치관, 상황 등 여러가지가 변화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앨범이 발매 된 후 그 변화에서 가장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스테파니 미초바'였다. 대중들은 이를 너무 쉽게 알수 있듯, 그의 앨범커버는 2005년에 찍은 미초바의 사진이었다. 앨범커버부터 앨범명과의 불일치를 이루지만, <NOWITZKI>는 전작보다 명징한 주제를 담고 있는 듯 하다. 


앨범이 담고 있는 가사의 표현방식은 대체로 그동안 아티스트가 보여줬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시각적인 흐름을 중심으로 한 가사를 구성하였지만, 특히나 다른 점은 조금 더 무의식 속에서 피어나는 의식을 의존하였다는 것이다. 시선의 흐름에 따라 구성하는 마디 하나가 다음 가사 속 자신이 내비치고자 하는 의식을 따라오게 하고, 결국 한 문단이 큰 '비유'가 되게 하는 방식의 작사가 반복적으로 보여지며, 비유가 점철되며 곡 안에서의 주제가 뚜렷해지는 그림과 같은 방식이 진행된다.


 '얼음 든 내 컵, 레몬 물에 성에 껴, 잔에 finger print, 지문같이 완전 미로, I feel so lost, 헤 mazing’  - Lemon

8번 트랙 'Lemon'의 경우, 곡 초반 부의 '하늘은 하나도 안 맑어'와 같은 분위기의 형성으로, 곡의 주제를 가늠할 수 있지만, 곡의 훅인 위 부분이 제시 됨으로서 직간접적으로 곡에서 담고 있는 분위기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곡에서 움직이는 시선 역시 아티스트에게 청취자가 의지하게 되며 이루어지는 분위기는 전달력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높이게 된다. '컵 - 성에 - 지문(finger print) - 미로 - 헤 mazing' 와 같이 복잡한 현 상태를 표현하고, 가사는 전체적으로 자신을 '레몬'으로 비유하며, 자신의 내부와 외부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상황을 표현하였다. "끊임없는 미로에 갇혔다"라는 표현을 가장 길고 어렵게 표현하였다. 무의식적으로, 하지만 난해할 수도 있는 이 부분은 단순히 자신의 감정만의 제시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무의식적으로 쓴 듯 한 가사들의 흐름 속에서 청취자들이 아티스트가 구성한 흐름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받게 된다. 가사의 몰입감이 개인적인 장면을 말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무엇보다 친절한 분위기 형성이다.

 '전통적인 남편상은 무시' (stinky kiss)와 같은 짧은 가사 속에서도 아티스트의 가치관을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다. 그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쫒아왔던 예술가적인 면모를 다가오는 현실 속에서도 보여주며, 자신의 배우자, 혹은 앨범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인물에 대한 유대감을 표현하며, 다른 아티스트들이 꾸준하게 다뤄왔던, 현실과 이상의 차이에서 불러오는 괴리를 가볍게 넘어가며, 아티스트의 자유로운 이미지를 더욱 극대화 시킨다. 또한, 빈지노라는 아티스트가 계속해서 다루었던 '여행'에 대한 주제 역시 곡으로 빠지지 않았다 '여행 again' 과 같은 트랙은 전작의 'we are going to'와 같은 포지션의 곡으로도 보이며, 여행이 주는 자유로운 이미지와 아티스트의 이미지, 그리고 비유와 시선의 흐름으로 이루어진 가사가 삼박자를 이룬다. '바람에서 비행기가 내렸어'와 같은 시적인 표현들은 개인적인 여행담을 다루는 가사들 속에서 여행이 가지는 설레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이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바람이 흘린 저 구름을 보니 머릿속에 스치네, 회생각이' 와 같은 의식의 흐름 같은 가사는 이번 앨범에서 빈지노가 가진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한다. 

 강점이 잘 보였던 트랙들을 지나 '침대에서/막걸리'와 같은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트랙에서도 빈지노 특유의 작사는 유독 빛난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트랙들과 달리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출발하는 해당 트랙은 다른트랙들과의 접근이 남다르다. 시선으로 시작하여, 자신의 생각으로 향하는 것과 달리, 자신의 생각으로 시작하여 시선으로 향하는 흐름은 '침대에서'라는 제목에 걸맞게 정적인 상태에서 진행되며, 자신이 느끼는 압박과 불안을 더욱 설득력있게 하는 무대를 만든다. 공상의 무대 침대에서 '베개는 굳은살이 됐어'라고 말하며, 자신이 빠지고 있는 'black hole'에 무게를 비유한다. 빈지노는 지속적으로 비유하는 물체를 지정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담은 상황을 비유한다. 지속적으로 보여지는 이런 표현들이 청취자들에게 피로감을 안길 수도 있지만, 언제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의 틀을 맞춰가며 자신의 고뇌를 주입하거나, 공감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기록하는 것이다.


 'Crime'과 'Change'와 같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담은 트랙에서도 청취자에게 듣는 재미를 제공한다. 동호대교에서 미초바와의 일화를 담은 트랙 'Crime'과 어릴적 반려견 창이가 개장수에게 팔리는 사건을 담은 트랙 'Change'은, 사실 Crime이라는 제목은 Crime의 가사보다는 Change의 가사가 더욱 가깝게 느껴지지만, change 속의 ‘창이의 실종’으로부터 일어난 사건이 기억으로서 더듬는 책장이 되기 위해서, 앨범 속에서 이 두 트랙이 ‘사라진 과거’과 ‘미래를 함께한 과거’로 나뉘며, 앨범에서 자신에게 벌어진 일생일대의 사건을 더욱 두드러지게 말하고 있는 재미를 제공하며 역설적인 설정으로 인한 흥미를 일으킨다. 

앨범표지에서도 알 수 있는 앨범의 주제는 'Sandman'과 'Radio'에서 조금 더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넌 나의 Waterfall, 내게 부어'와 같이 자신에게 묻어 있던 흙이 묻어 있는 자신을 깨끗이 싯겨줄 수 있는 미초바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고, '내 손에 널 주겠어? 나 그대랑 춤추겠어, 늙어도' 와 같은 가사로 자신에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모습은 단순한 데이트를 담았던 'Crime'의 제목의 가치를 더욱 부각시킨다. 자신의 우울과 압박속에서 괴로웠던 나날들을 한 인물의 등장으로 자신의 인생이 통째로 바뀌게 되고, 자신의 삶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동반자가 되는 과정을 앨범에, 일기장 처럼 담게 된 것이다.


 또한, 그간 자신을 형성해온 커리어 속에서의 보여줬던, 수 많은 변화 속에서 수용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자신이 건설해온 아티스트의 아이덴티티는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 담겨있다. 'monet' 이나 y2k82가 참여한 '바보같이', oygli의 수려한 랩을 보여준 'coca cola red'에서의 모습은 가벼운 단어들의 사용과는 반대로 자신의 가치관을 뚜렷하게, 여전히 보여준다. 래퍼로서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트랙들과 자신의 고뇌를 다룬 우울하면서도 심도있는 트랙을 거쳐가면서 보여주는 자신의 일상 속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차지할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앞서 보여줬던 '청춘'을 이야기하는 '청춘찬가'의 곡을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로서의 인간적인 성숙을 보여준다. 아티스트가 아닌 자신의 인생에서 함께 할 사람을 찾은 감정과 과거의 기억을 담은 일기장을 열어보는 감정으로 자신이 성숙해져 있는 과정을 담은 것으로 청취자에게 지속적으로 과거임을 어필하고, 지금의 모습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허술하면서도 촘촘한 스토리텔링이 청취자에게 큰 놀라움을 선사한다.


 결국 빈지노는 더 이상 빛나는 젊음을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꿈을 갈망하던 건강한 젊은이는 원하는 것들을 하나 둘 씩 이루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잃게 되었던 감정의 빈곤함도 동반자를 만나게 되어 치유가 되었고, '24 : 26'에서 말했던 '왜냐면 난 내가 내 꿈의 근처라도 가보고는 죽어야지 싶더라고'와 같은 추상적인 목표를 설정했던 열정이 씨가 되어, 자신의 구체적인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보는 시선을 푸는 빈지노의 가사는 조금 더 숨겨진 확신이 생겼고,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예술가이지만, 그 누군가들과 비슷하게도 안정적인 삶이 주는 '해피엔딩'에 탑승하였다고 본다.  이 앨범은 일기장이라고 말하지만, 일기장이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는 앨범이며,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소중한 앨범이다.


<NOWITZKI>


작가의 이전글 2023 상반기 사심 결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