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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원 Aug 04. 2020

명랑한 밤길

*

 


 아주 긴 자취생활과 아주 짧은 해외살이를 끝내고 개가 있는 집으로 돌아온 후로 개의 산책은 온전히 내 몫이 됐다. 아주 덥고 습한 날이면 이건 부당하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입 밖으로 뱉을 순 없는 게 온 세계를 어질러 놓고 있는 그 녀석의 영향으로 지금 나는 완전 백수이기 때문이다. 퍼뜩 정신 차리고 개와 나갈 채비를 한다. 젊은 여자가 큰 개를 데리고 다니면 사건 사고가 따라붙기 마련인데, 그중에는 악의로 가득한 것과 호의의 그것이 있다. 마주친 호의에 대해서만 기록해보려 한다.


 나는 그를 할렐루야 아주머니라고 혼자 이름 붙였다. 그와는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마주쳤다. 그가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부터 개를 보고 움찔거렸기 때문에 나는 무릎 사이에 개를 가두고 앉혔다. 우리 개가 안 문다는 것은 말로는 증명할 수 없고 행동으로만 증명할 수 있다. 오해를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지나쳐 갈 줄 알았던 그는 외려 우뚝 섰다. 그의 눈은 하늘을 향해 있었다.

 “제가 눈팅을 좀 해도 될까요?”

 눈팅! 나는 오랜만에 들어본 단어에 어리둥절해하다가 내 허락을 기다리느라 아직도 하늘을 보고 있는 그에게 서둘러 답했다. 드디어 개를 바라본 그는 이어서 개를 쓰다듬어 봐도 되냐고 물었다. 그는 어쩌다 알게 된 사실인데 개의 눈을 바라보는 행동은 시비를 거나 마찬가지라고 자기는 난데없이 시비를 걸고 싶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사람에게 안될 건 없었다.

 “할렐루야!”

 그가 개의 보솜보솜한 이마를 쓰다듬고 뱉은 감탄사다. 그는 자연스럽게 이마를 쓰다듬다가 개의 온몸 전체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엉덩이를 몇 번 토닥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 정말 아멘이다!”

 개를 담뿍 예뻐해 준 뒤 그는 내 손을 잡고 오늘 산책 나와 줘서 정말로, 마주쳐줘서 정말로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그의 생경한 어휘에 계속 어리둥절한 채로 '아 예 예' 하고 떨떠름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는 기분 좋은 듯 콧노래를 부르며 멀어져 갔다.


 우리 동네에는 시바이누거 엄청나게 많이 산다. 산책 중에 만나게 되는 개의 절반은 시바이누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동네 바이누는 거의 모두 가족이라고 한다. 어떤 노부부가 다섯 마리쯤 키우는데 그들의 자손을 모두 이웃들에게 분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바견들과 하도 많이 마주치니 소문의 진상을   있을 법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의 호전적이고 엄살 많은 성격 탓이다. 마주치기만 해도 깡깡 짖어대서 사람들끼리 얘기를 나눌 기회조차 없다.


 어떤 시바견은 제법 매너가 있어서 그의 보호자 짧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래 봤자 서로 개의 이름을 가르쳐주는 게 전부였다. 보호자가 자기 이름을 불러준 것에 기세 등등해졌는지 이름이 나오자마자 우르르 깡깡거렸는데 짖다가 닫는 입에 우리 개가 물릴뻔했다. 보호자는 작고 앙칼진 개를 쏙 들어 안고 우리 개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우리 집 개가 쪽바리라 예의가 없어 정말 미안해.”

 예상치 못한 단어의 등장에 약간 어안이 벙벙하고 웃겼다. 그것은 어떤 호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자신의 개를 멸칭으로 부르면서까지 사과하고 싶은 마음은 포근한 익살이다. 참고로 개의 이름은 김두한이었다.


 이 것은 호의에서 비롯된 일은 아니지만 꽤 강렬한 일이라서 기록해두고 싶다. 바로 개가 고양이에게 시쳇말로 선빵 맞은 일이다. 개와 나란히 길을 걷고 있는데 차 밑에서 고양이가 뛰쳐나와 개를 갈겼다. 그리고 사이렌처럼 울었다. 내가 발로 쿵쿵거려도 피할 기색이 없었고 갑작스러운 공격에 흥분한 개는 몸을 가만두지 못했다. 개를 가까스로 끌고 가는 도중 차 밑에 있던 다른 덩어리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얀 솜털이 부숭부숭 난 여러 개의 덩어리들. 새끼가 있었던 것 같다. 고양이가 안 보이는 곳까지 가서 개를 진정시켰다.

 “나쁜 마음은 아니었을 거야. 지키려고 그랬을 거야.”


 어제는 남자 셋을 만났다. 두 사람은 형제였고 나머지 한 명은 형제들도 모르는 사람인듯했다. 그들에게서는 어렴풋한 술 냄새가 났다. 그들은 개와 인사하고 싶어 했고 얼굴에 띄운 악의가 없길래 그러라고 했다. 형제는 개를 쓰다듬는다기보다 어루만졌다. 형처럼 보이는 이는 대뜸 내게 핸드폰 배경화면을 보여줬다. 개가 예쁘게 앉아있는 사진이 보였다.

 “우리 루나예요. 무지개다리 건넌지는 좀 됐지만…”

 루나는 떠난 지 8년이 넘었지만 그의 핸드폰 안에 늘 앉아있었다. 두 형제는 술김에 처음 보는 개와 여자 앞에서 조금 울었다. 나머지 한 명은 더 많은 눈물을 흘렸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바로 그제 개를 떠나보냈다고 했다. 그는 개를 딸이라고 불렀다. 덥고 습한 날에 남자들의 얼굴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그들은 개에게 덕담을 많이 해주고 나에게 고맙다고 했는데 나는 무엇에 대한 감사인지 정확히 알아들었다.


 밤마다 하는 우리의 산책은 어떤 의미일까. 나란히 걷는 이 단순한 몸짓이 남기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는 모르겠다. 어떤 몸짓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도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것만 겨우 알겠다. 가끔은 할렐루야나 아멘이 될지도 모른다. 모르겠으니 항상 명랑하게 걸을 수밖에 없겠다. 흐린 데 없이 밝고 환하게 가장 큰 호의와 결백을 표현하면서 사뿐사뿐 걸을 수밖에 없겠다.


2020.08.03.



*소설가 공선옥이 2006년 발표한 소설의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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