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고양이의 어깨는 들고양이의 어깨보다 자주 뭉친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집고양이는 들고양이들에겐 없는 주인을 자주 올려다보기 때문이랬다. 나는 서울에 있을 때 고향에 있을 때보다 어깨가 자주 아팠다. 집고양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서울엔 너무 높고 말끔해서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 건물이 너무 많았다.
대학생인 진이랑 나는 서울로 실습을 왔다. 숙소에 도착해서 셔츠랑 정장 바지를 예쁘게 다려서 걸고 있었다. 난데없이 학군단 훈련소에 있는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걔는 주말이라 핸드폰을 잠시 받았다고 했고, 수도로 상경한 너희가 궁금하다고 했고, 자기가 있는 데는 강원도 산골이고, 밥으로는 감자가 자주 나온다고 했다. 우리는 걔 전화가 너무 웃겨서 방금 숙소에 도착했고, 옷을 정리 중이고, 서울역에서 우리 말씨를 듣고 동묘까지 이만 원에 태워주겠다는 택시 기사님을 만났고, 탈 뻔했지만 타지 않았다고 했다. 걔는 너희 이제 큰일 났다고 서울 생활 어떻게 하냐고 했다. 걔는 자기가 있는 곳은 산골이어서 경사를 자주 걷는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윗사람에게는 또 윗사람이, 그 윗사람에게 또 윗사람이 있어서 계단 같다고 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수직과 수평의 도시, 서울이라고 했다. 숙소로 오는 길에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수직으로 쭉쭉 뻗은 고급 아파트가, 오른쪽에는 게딱지같이 납작한 집이 줄지어 있는 광경을 봤기 때문이다. 진이는 우리 셋 다 있는 곳에서 힘내자고 했다. 걔는 호쾌하게 그러자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일은 명동에서 했고 잠은 청계 8가에서 잤다. 버스는 숙소에서 회사까지 경사 없는 길을 달렸다. 높은 신발을 신고 높은 건물에서 일했다. 그러곤 부산스럽게 좋아했다.
야 나 좀 커리어 우먼 같지? 여기는 경사가 잘 없어서 구두도 신을 만하다.
도시 이름에 산이 없잖아. 서울이다. 서‘울’.
가끔 걷다가 삐끗 삐끗했는데 원래 잘 신지 않던 신발을 신어서 그런 건지, 너무 높아서 현기증이 나서 그런 건지 알지 못했다.
주말엔 점심 먹을 시간에 일어나서, 운동화를 신고 외출했다.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가까이 가자, 무시할 수 없는 욕지거리가 들렸다. 납작한 여자가 악쓰고 있었다. 자꾸 욕을 하고 자꾸 ‘즙초그치!’라고 했다. 계속 듣다 보니 ‘잡초같이!’였다. 여자는 공무원들에게 물건을 뺏기고 있었다. 물건을 팔면 안 되는 곳에서 물건을 판 게 화근이었다. 여자는 인도도 아니고 차도에서, 그것도 버스 정류장에서 물건을 팔았다. 목소리에 영혼이 있는 사람이었다. 안 우는데 우는 것 같았다. 공무원들이 떠나자 여자는 쏜살같이 난리를 당하던 자리에 다시 돗자리를 깔고 물건을 널었다. 나는 그때야 뭘 파는지 알았다. 장갑이었다. 천 원짜리. 평평한 지폐 한 장을 받고 파는 납작한 장갑이었다. 모두 너무 납작해서 버스 바퀴에 깔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장갑도, 돗자리도, 여자도.
시끄러운 일이 벌어졌으니까 누군가는 잘못했을텐데, 그러나 누가 악인인지, 누가 선인인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잠실로 갔다. 맛있는 밥을 먹고 석촌 호수 주변을 산책했다. 죽순 같은 롯데월드타워가 조금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했다.
여기서는 하늘 보기가 쉽지 않네.
빌딩 때문에 고개를 완전 젖혀야 해.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어둑어둑한 청계천을 따라 버스는 경사 없는 길을 천천히 달렸다. 버스 차창 밖을 보다가 누워있는 남자를 봤다. 노숙인이었다.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한다. 칼바람에 얼굴 살결이 하얗게 일어나고 눈가에 눈곱인지 뭔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래, 아기 고양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시에 적응하지 못한 가련한 들고양이의 새끼. 건물들을 올려다보다가 어깨가 너무 아파서 아예 누워버린 것이겠지. 아무도 안아올려주지 않아서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을거야. 눈을 감고 그날 본 123층짜리 건물을 생각했다. 캣타워가 되기엔 너무 매끈한 그 건물을, 발판이 하나도 없는 그 건물을, 하늘을 가르는 그 건물을. 여기는 서울, 수평과 수직의 도시였다.
2019.07.26 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