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뉴스
김명하 안산대 유아교육과 교수
전염병으로 회의도 줄었고, 진행하던 세미나들도 멈췄습니다. 가는 공간도 만나는 사람도 어제와 그제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직접 마주하는 부당함으로 고통받지 않는다면 감정도 단조롭습니다. 단조로운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일상이 안온하다 착각하게 됩니다.
청와대와 광화문을 늘 지나는 공간에서는 일상이 조용할지라도 결코 삶이 안온하지 않았습니다.
청와대 앞에서, 광화문 한복판에서 조용한 일상이 부지불식간에 해체된 이들의 목소리가 분노가 되고 외침이 되고 눈물이 된 공간을 안온하게 지나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늘 예측불허이고, 한 순간의 어긋남은 누구도 원치 않았으나 어느 순간 삶을 휘저어 놓습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전조가 있었는데도 방치되어 비극이 된 상황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때 어긋남은 부당함이 되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부당함은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억울함이 됩니다.
삼성전자 사옥이 있는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통폐쇄회로 화면 철탑 위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의 고공농성은 지난 4일 300일이 되었습니다. 지상 25m, 1평도 되지 않는 극단적 공간에서의 300일은 부당과 억울을 배제하고는 설명되기가 어렵습니다.
1982년 삼성항공 입사, 1984년 삼성시계로 전보, 1990년 삼성그룹 경남지역 노조설립 준비위원, 이후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조직의 회유협박과 부당한 징계, 그리고 1991년 징계해고, 이에 대한 부당해고 소송, 소송을 무마하기 위한 조직의 복직합의서 제안 및 조직의 일방적 합의서 파기, 2000년 삼성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구속 등 조직이 한 개인을 무참하게 하는 일반적 수순이 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과정에서 한 개인의 일상적 삶 역시 유린되었습니다.
그는 2016년부터 삼성본관 앞에서 해고자 복직 요구를 하고 광화문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였고, 결국 2019년 6월 10일 철탑에 올라 55일의 단식농성 이후 현재까지 300일이 넘는 시간을 지상 25m, 한 평도 안 되는 원형 공간에 머물러 있습니다. 삼성의 무노조경영 및 조직의 부당징계, 해고, 괴롭힘 등 노동자에 대한 불법행위에 대한 비판은 수많은 김용희들이 불쏘시개가 되어 꺼지지 않았고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비교적 평안하게 안착해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하고 있음’에 대한 당신의 수많은 원색적 비난이 ‘하지 않고 있음’에 대한 서슬퍼런 분노가 되길 희망합니다. 빨갱이어서, 특정 당색을 지녀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존적 존재의 고통과 비애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분노가, 다수가 아니어서 비난받고 조롱받는 소수의 고통과 비애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분노가 당신과 나의 입과 글에서 나오기를 희망합니다.
“우린 출생지를 정할 수 없죠. 운명이 정해준 곳에서 태어나는 겁니다. 당신은 여기서, 난 거기서 태어났죠. 뭐가 우릴 갈라놓나요? 국경은 기득권층이 정한 하나의 개념입니다. 오늘 당신은 기득권층의 자리에 앉아 있지만 무엇이 그 자리에 앉게 했는지 기억하십시오. 운명이죠(메시아 4회).”
단조로운 날들이 반복되다 보면 일상이 안온하고 평화롭다고 착각하게도 됩니다. 300일간 지상 25m 1평 공간에서 근육이 모두 손실되었을지라도, 아직도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4월의 세월호와 4.3의 억울함도, 폭파된 구럼비와 해체된 공동체의 부당함에 대한 분노도, 누군가가 겪은 구체적 고통이라는 사실을 잊고 일상에서 그들을 치우기만 하면 삶은 평온합니다.
그러나 어떤 운명이 그는 300m 고공에, 세월호에, 강정에, 1948년의 제주에, 그리고 나는 오늘의 지상에 올려놓았는지 모릅니다. 다만 그것이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운명이라면 외면은 오만임에 틀림없겠습니다. 부디 살아 내려오시길, 그가 살아 내려오는데 우리의 입과 글이 계단이 되어 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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