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가령 회식 장소를 정할 때 늘 다수의 의견에 따라가겠다고 한다. 음식을 시킬 때도 자신은 상관없으니 먹고 싶은 것으로 시키라고 한다. 이런 사람은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도 기분을 맞춰 주기 위해 동조한다. 온 신경이 자신이 아닌 남을 향해 있는 사람이다.
‘리플리 증후군’은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스스로가 꾸며낸 허구의 세계를 진실로 믿는 증상을 말한다. 또한 상습적으로 거짓말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다.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거짓말은 탄로 날까 두려워하는 것과 달리,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한 말이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두려움도 없다.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 소개된 20대 청년은 6여 년 동안이나 명문대 신입생 행세를 했다. 무려 48개 대학의 수많은 학생들을 속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이 학생도 리플리 증후군으로 알려졌다.
SNS가 활발해지면서 인터넷을 통해 거짓된 모습을 보이는 ‘사이버 리플리 증후군’이 생겨났다. ‘청담동 주식부자’로 유명했던 이희진 씨도 이런 증상을 의심받았는데 결국 사기 혐의로 구속되었다. 발달 장애 억만장자로 유명했던 중국의 첸샨도 사진 편집, 도용으로 자신을 꾸민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사람들의 이면에는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보상심리 욕구가 강렬하다. 타인의 관심을 받고 호감을 받아야 만족되는 심리다. 이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힘겨워한다. 결국 그런 심리가 깊어져 리플리 증후군과 같은 병적인 증세로 발전한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잘못된 영향을 끼치거나 불편함을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것은 배려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눈치를 보고 산다는 것은 자신을 잃고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사람처럼 거짓된 삶을 사는 것과 같다. 이런 사람들은 ‘좋은 사람인 척’,‘부자인 척’,‘이해심이 많은 척’,‘멋진 사람인 척’ 하느라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자의식에는 사적 자의식과 공적 자의식이 있다. 사적 자의식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 등을 의식하는 것을 말한다. 공적 자의식은 하루에도 수십 번 거울 앞에 서서 옷을 바꿔 입고 나가는 등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남이 보기 때문에 하는 봉사는 진정한 의미의 봉사가 아니다.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갔던 지인이 실제 보았다고 말해준 연예인은 봉사활동 지역 아이들과 사진을 몇 장 찍더니 시내 호텔로 돌아가버렸다고 한다.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공적 자의식이 높은 사람이다. 남을 돕고 싶은 선의의 마음으로 시작하고 다녀와서 자신이 행복한 것이 봉사다. 그래서 봉사활동 다니는 분들을 보면 한 두 번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다닌다. 남과 상관없이 자신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사적 자의식이 높은 사람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남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 친구가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면 공감하며 듣고 때로는 자신의 일처럼 흥분하기도 한다. 돌아서면 자기 문제를 생각하느라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을 생각하며 살아가기도 바쁜 세상이다. 다른 사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잠깐일 뿐이다.
유시민 작가가 장관 시절 일등석이 부담스러워 비즈니스석으로 타면 안 되냐 물었다. 담당관의 답변은 “장관이 비즈니스석을 타면 국가 위신이 떨어집니다.”였다. 국민의 세금으로 출장 가는 장관이 이코노미석을 타고 간다 한들 누가 무어라 하겠는가. 어느 나라에서 장관의 비행 좌석을 가지고 왈가왈부 관심을 가지겠는가. 우리나라는 특히 체면과 위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 그러니 장관의 비즈니스석만으로도 위신 운운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삶은 불필요한 지출도 서슴지 않게 됨을 보여주는 사례다.
회사는 다니냐, 애인은 있냐, 결혼은 언제 하느냐, 어디 사느냐 등 오랜만에 만난 친척, 선배, 동창이 물어본다. 사실 크게 관심 없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한 채 다음에 만나면 같은 질문을 똑같이 한다. 지난번 만났을 때 이야기했었지 않냐고 말하면 그런 걸 어떻게 기억하냐며 당당하게 다시 물어본다. “그래서 어디 산다고?” 어차피 끝이 없는 돌림노래임을 알기에 묻고 답하고 또 잊어버린다.
혜민 스님은 실제로 자신이 쓴 책을 들고 지하철을 타 봤다고 한다. 스님이면 일단 눈에 띌 테고 책 띠지에 혜민 스님 얼굴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은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까,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렇게 고민하고 살 필요가 없어요.”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행동이 아니라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자. 남이 어떻게 바라보든 자신은 ‘있는 그대로의 나’ 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