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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Aug 25. 2018

아무렇지 않게 낭비되고 있는 것들

싱크대가 막혔다. 이런 낭패가! 기술자에게 전화해 예약했다. 


다음날, 상황을 잊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저녁거리를 사들고 왔다. 싱크대에 재료들을 내려놓으며 '아차!' 싶었지만 이미 사온 재료들을 싱싱할 때 사용하고 싶은 욕심에 사용한 물을 모아 다른 곳에 버리면서 요리했다. 물을 버려야 하는 횟수를 보며 내가 사용하는 물의 양이 엄청남을 느꼈다.


한데 그날 저녁 오기로 했던 기술자가 갑자기 약속을 취소했다. 집안에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불편하지만 하루 정도는 참아보자 기다렸다. 그럼에도 싱크대를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수 없으니 모여진 물은 여전히 다른 곳에 버려야 했다. 대신 물을 크게 틀지 않고 졸졸졸 흘러내리게 사용했다. 전날에 비하면 확실히 물 사용량이 줄어들었다


다음 날 약속된 시간에 맞춰 기술자가 올 거라는 기대로 싱크대 주변을 정리하고 기다렸다. 다이어트할 때 맛있는 쌀밥이 먹고 싶듯 물이 안 내려가니 왠지 요리를 거창하게 하고 싶은 이 심리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그날은 싱크대를 뚫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집에 와 저녁을 먹으라고 해 두었다. 저녁 먹은 설거지를 쌓아두고 기술자를 기다렸다. 드디어 이 불편함이 해결된다 생각하니 속이 후련했다. 겨우 이틀인데도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도 기술자가 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결국 또다시 물을 나르며 설거지를 해야 했다. 졸졸졸... 졸졸졸... 영차.  졸졸졸... 졸졸졸... 영차. 이날도 역시 물 사용량이 급격히 줄어듦을 느꼈다. 


싱크대에 물을 버릴 수 없는 며칠을 보내며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물을 펑펑 사용하고 있었던 나를 발견했다. 졸졸졸 흐르듯 나오는 물에도 충분히 요리하고 설거지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사용하지 않을 때는 습관적으로 물을 끄고 있는 나를 보며 그동안 습관적으로 물을 크게 틀고 흘러내리도록 내버려뒀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낭비되는 물의 양이 엄청났음을 알게 됐다.


엄마는 가뭄이 계속되니 물을 아껴 쓰라고 말씀하셨다. 텃밭에 물을 줄 때도 물을 조금만 줘도 되는 이른 새벽이나 저녁에 주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어릴 때부터 늘 그런 말을 듣고 자라 물 사용에 민감한 편이라 생각했음에도 일상을 살다 보면 그것을 잊게 된다. 옆에 엄마처럼 잔소리를 해 줄 사람도 없으니 말이다.


아직 싱크대를 고치지 못했다. 기술자들은 언제나 바쁜 모양이다. 


나는 여전히 싱크대 물을 졸졸졸 흐르도록 사용하고 사용하지 않는 짧은 순간에도 물을 끈다. 이렇게 사용해보니 나의 물 사용 습관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엄마 말씀처럼 가뭄이 계속될 수 있으니 물을 아껴야 한다는 거창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 듯 불필요한 물 사용을 자제해 봐야겠다는 마음이다. 


그동안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고 구매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다른 생활에서의 정리는 되돌아보지 못했음을 반성했다. 오늘부터 물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불필요한 것들, 아무렇지 않게 낭비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점검 모드를 작동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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