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이 떴다. 선선해진 날씨 덕에 저녁 산책길 사람들이 평소 두세배 늘었다. 가을이라고 소리치듯 밤하늘마저 푸르고, 보름이 지나가는 달빛 역시 동그랗게 자신을 뽐내며 세상을 비춘다.
지난주 엄마 집에서 본 하늘은 별이 곧 쏟아질 것 같았다. 아주아주 어릴 때 보던 하늘처럼 저 하늘이 서울에서 보던 하늘과 같은 하늘이 맞나 싶을 만큼 많은 별들을 보고 왔다. 이렇게 맑은 날 친정집 하늘은 그날처럼 별이 쏟아지고 있겠지?
하루 종일 산책한 날.
오전에는 흙길을 걸으며 산들바람을 느끼고, 오후에는 공원을 걷다 분수가 만들어내는 무지개를 보며 홀린 듯 앉아 자리를 뜰 줄 모르고, 늦은 저녁에는 커다란 달이 이뻐 산책을 나갔다.
이런 날이다.
평온하고 평화롭고 여유로운 느낌. 마음의 동요도 걱정도 없으며, 덥지도 춥지도 않은 산들바람이 내 머리칼을 흔드는 느낌. 세상의 모든 여유로움을 우리만이 가진 듯 조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이 느낌이다. 내가 느끼는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삶에 대한 감정이다.
평소의 삶 속에 이런 느낌이 있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마음이 좋지 않아도 늘 베이스에 깔려 있는 내 삶의 감정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자주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 든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무작정 좋다. 마음껏 뛰어놀며 행복했던 어린 시절.
지금의 삶이 그렇다. 몸은 어른이지만 온 우주가 어린 시절의 그 공간으로 나를 데려다 주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햇살 비추던 마루에 누워 엄마가 머리를 만져주던 날, 친구들과 마음껏 동네를 뛰어다니며 놀던 날, 펑펑 내린 눈이 내 허리가 넘도록 내려 친구를 만나러 나가지 못한 날, 삽으로 눈을 치워주며 길을 터주던 아빠가 있던 그 공간. 그와의 삶은 나를 그런 공간으로 데려가 주는 느낌을 준다.
그의 다리를 베고 누워 가을바람이 부는 하늘을 본다. 그는 내 머리를 만지며 옛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처럼 한들한들 바람이 불던 날 버드나무에 올라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나무를 타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 나는 눈을 감고 어린 시절 그의 추억 속으로 들어간다. 나의 어린 시절과 다르지 않은 행복한 공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