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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Sep 12. 2018

러시아의 땅, 칼리닌그라드를 다녀오다.

본토와 분리되어 있는 러시아의 땅, 칼리닌그라드를 다녀오다.


이번 여행은 폴란드, 발틱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과 러시아(칼리닌그라드)를 여행하는 일정이었다.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발틱해에 붙어있는 칼리닌그라드라는 곳이었다.


러시아 본토와 떨어져 있지만 러시아 땅인 그곳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있어 자유롭게 유럽을 여행하고자 하는 여행자에게는 그다지 인기 있는 곳은 아닐 수 있다.  

- 칼리닌그라드 위치-

중세 이후 독일 영토였으며, 동프로이센(독일어: Ostpreußen) 지방의 일부였다. 동프로이센은 프로이센 왕국의 발상지이자 중심지였으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하면서 폴란드와 소련의 영토가 되었다.

폴란드는 동프로이센 지방 전체를 할양받기를 주장했지만, 소련의 스탈린이 부동항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동프로이센의 주도였던 쾨니히스베르크(독일어: Königsberg) 주변을 소련 땅으로 정했다. 쾨니히스베르크가 "칼리닌그라드"로 개명되면서 이 곳의 지명은 "칼리닌그라드 주"로 바뀌었다.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한 뒤 독립국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이 곳의 영유권을 영구 포기했다. (출처 : 위키백과)

발틱 3국은 유럽연합에 가입되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지만 칼리닌그라드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러시아 입국심사를 거쳐야 하고, 여행을 마친 후에는 러시아 출국 심사폴란드(또는 리투아니아로 나온다면 그곳의) 입국심사를 거쳐야 하니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유로도 사용할 수 없으니 칼리닌그라드 여행을 위해서는 러시아 돈으로 환전 또한 필수다.


지난 소치 올림픽 때 칼리닌그라드가 러시아 땅임을 전 세계에 알리긴 했지만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면 이런 곳에 러시아 영토가 있을 거라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곳이다. 나는 칼리닌그라드를 여행하면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이곳이 본토의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나 의문이 들기도 했다. 본토인 러시아를 가보지 않아 분위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이 도시는 어쩐지 정체된 느낌을 받았다.


인구의 90%가 러시아인이고, 독일로부터 독립할 때 분리 독립을 할 것인지, 러시아 국적을 가질 것인지 선택권을 주었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가 러시아인인데 무슨 독립을 하느냐'며 러시아로 영입됐지만 고립된 지역에서 살아가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 현재는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러시아 땅으로 귀속된 상태에서 분리 독립을 할 여력도, 힘도 없는 그들은 두 나라 사이에서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칼리닌그라드의 가장 큰 여행지는 칸트의 무덤과 칸트 동상이다. 애써 찾아간 여행 루트가 허무해 보이지만 이곳에서 칸트는 생을 다할 때까지 철학을 이야기했으니 흥미가 있다면 한 번쯤 가보는 것도 좋다. 또한 이곳이 러시아인지 독일인지 모를 묘한 도시 분위기를 느끼며, 고립됐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삶을 영위해가는 이들을 보고자 한다면 역시 추천한다.

- 칸트의 무덤과 동상 -

칼리닌그라드로 들어가는 입국심사는 40분 만에 끝났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단체 여행객으로는 최단시간이라고 하는데 행운이 따른 듯했다.


하지만 러시아 출국과 폴란드 입국 심사는 장장 4시간 30분이나 걸려 혀를 내두르게 했다. 러시아 출국은 30분 만에 진행됐지만 폴란드로 재입국(이미 며칠전 폴란드 바르샤바로 입국했었다.)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아주아주 가끔 발생한다는 여행 가방 오픈 검열도 두 사람에게나 일어났으니 이 정도면 행운은 입국할 때 모두 사용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러시아를 경유하는 사람들은 담배, 마약 등을 소지하고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꼼꼼하게 체크한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다. 심지어 버스에서 내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아 꼼짝없이 차 안에 있어야 했다. 버스 안에서 두 시간을 대기했고, 다시 5분 이동 후 한 시간을 대기하고서야 버스에서 내려 입국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으니 총 세 시간을 버스 안에 갇혀 있었던 셈이다.  


겨우 입국장으로 들어갔는데 수학은 잘하지만 산수를 못하기로 유명한 폴란드의 심사 담당관이 가이드의 유럽 체류 기간을 가내 수공업으로 계산하느라 꽤 오랜 시간을 소비했다. 그녀는 거의 수능 시험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머리를 뜯어가며 한참의 시간을 사용하고서야 일수 계산을 끝냈다. 나는 그녀가 계산을 정확히 했는지 정말 정말 궁금하다. 하하하!


여행에서의 기다림이란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다들 기다림이 여유로웠다. 한국에서였다면 누군가 한 명이라도 아니, 몇 명의 한국 아줌마들이 나서서 왜 이렇게 늑장을 부리냐 소란을 피웠을 텐데 역시 여행은 기다림의 미학이기도 하다.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도 포함되었겠지만.


점심도 거른 상태에서 4시간 30분의 입국 심사가 끝나고 드디어 차가 폴란드 땅으로 출발하는 순간 누군가 소리쳤다.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 재밌었어!


맞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여행을 온 시간이니 그것마저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자는 칠십 대  할머니의 말에 다들 '그래~ 그래~'하며 맞장구를 쳤다. 나 역시 어떤 여행에서나 사건 사고는 발생하는 법, 즐거운 추억이 되리라 생각했다. 결국 이렇게 돌아와 가장 먼저 추억하는 일이 되었으니 그것으로 됐다. (아니 패키지여행이 0순위였던가? 하하하!)


늦은 점심은 여느 때보다 맛있었다. 한톨도 남기지 않고 모두 먹었으니 역시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평범했던 이날의 식사가 여행 내내 먹었던 음식 중 가장 맛있는 요리로 기억됐다.

-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먹은 점심 식사 -

칼리닌그라드는 리투아니아의 해안사구와 댄싱 포레스트를 여행하고 넘어가는 일정이었다. 어쩌면 너무나 아름다웠던 해안사구와 청정지역이었던 댄싱 포레스트의 맑은 숲 산책이 긴 출입국 심사를 기다릴 수 있는 힘이 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이란, ‘걸어 다니는 독서’라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알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지듯 여행은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고 그것을 경험하고 나면 좋은 추억이 된다. 그것이 낯선 경험일수록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법.


칼리닌그라드를 짧은 시간 머물렀고, 많은 것을 보지는 않았지만 입출국만으로도 워낙 강렬해서 꽤 오랫동안 기억하고 추억할 여행지가 될 듯하다.

- 리투아니아 니다의 해안사구 -
- 리투아니아 댄싱포레스트 자연 숲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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