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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Sep 19. 2018

나에게 주는 여유로운 시간

오랜만에 보통의 출근 시간에 맞춰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로 들어서는 입구, 에스컬레이터부터 줄을 서야 하는 일이 낯설게 느껴졌다. 늘 복잡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던 직장인이었음에도 망각의 동물인 나는 몇 달 사이 이 풍경을 잊었나 보다.

지하철은 사람들로 꽉 차 겨우 서 있을 정도였다. 모두들 이 좁은 공간에서도 놓치지 않아야 할 듯 스마트폰 속 세상에 빠져있었다.


게임을 하는 사람, 동영상을 보는 사람, 음악을 고르는 사람, SNS를 보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다. 나는 스마트폰 속을 헤매는 그들을 보고 서 있었다. 오랜만에 사람 많은 지하철이 내게는 놓치고 싶지 않은 세상이었으니 말이다. 지하철의 많은 사람들이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장면인 양 오롯이 눈으로 담으며 서 있었다.  


그렇게 꽉 찼던 지하철이 어느새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간을 보니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 시간에도 지하철에 있다면 지각이겠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줄어들더니 낮시간처럼 한가로워졌다.


다시 익숙해진 모습.

적당한 여백.

나는 올해 누군가의 안식년처럼 여유롭게 지내보자 결심했다. 공식적인 육아휴직을 냈다거나 퇴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길고 길었던 직장생활을 해 온 나에게 주는 나름의 '포상'이라고나 할까.


물론, 여유로움을 견디지 못해 일을 하고, 일을 만들고 다녔으니 절반 정도 유지한 셈이다.  


다만, 업무에 집중하던 삶을 책 읽고 글 쓰는 일에 집중하고, 정해진 출퇴근 시간에 맞춰 다니던 회사도 몇 달 안되지만 여유로운 시간에 맞춰 다녔다. 업무량도 예전에 비하면 절반도 되지 않았고 그 업무 또한 집 근처 카페에서 하는 날이 많았다.


올해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재택 아니면 안 할래요~"였다. 그러니 일이 많지 않았고 있다 하더라도 작은 일이었다. 나름 나만의 룰을 지켜나가기 위해 애를 쓴 것이다.


나는 능력자도, 재주가 좋은 것도,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다. 특히 수입은 예전에 비하면 거의 바닥이라고 봐야 한다. 복잡한 아침 출근길 지하철 속 사람들처럼 나 역시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살면 당연히 수입은 많아지겠지. 수입과 비례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말이다.


그 삶을 적어도 한 해만큼은 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돈은 언젠가 다시 벌 수 있겠지, 그리고 지금 벌어놓은 돈으로 당분간은 적당히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물론 가족 부양의 의무를 가슴 깊이 가지고 계신 남편님 찬스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출은 매년 많아질 뿐이니까.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긴 하나 평균 수명으로 본다면 나는 절반 정도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중  겨우 일 년의 시간을 이렇게 보내고 있을 뿐이다.

여유롭게, 돈에 구애받지 말고 살자!

오랜만에 복잡한 출근길 지하철에서 긴 팔 입은 사람들을 보니 곧 내게도 저들과 함께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구나 싶어 마음이 바빠졌다. 여유로운 이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말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글을 쓰고, 캘리그래피 초급반을 마스터하고, 동네 카페에 나가 혼자 여유롭게 커피도 한잔하는 삶을 하루하루 오롯이 즐겨야겠다. 지나고 나면 이 시간이 또 얼마나 그리워지겠는가. 복잡한 출근길 지하철 사람들이 낯설 듯 이런 삶도 낯설어지겠지.


그럼 오늘도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봐야겠다. 그리고 한가득 책을 안고 돌아와야지. 오후가 되면 캘리그래피 연습을 하고 느지막이 낮잠도 자야겠다.


나에게 준 여유로운 이 시간을 마음껏 즐겨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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