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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Sep 10. 2018

패키지여행에는 '사생활 질문'도 포함되나요?

일상으로 돌아왔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지나고 나니 순간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다른 시간보다 빠르게 느끼는 '여행의 시간'이기 때문이리라.


여행에서 돌아오면 한동안 그곳에서 헤어나지 못해 힘이 든다. 물리적인 시차 적응도 있지만(해외였을 경우) 감정적으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돌아오는 여행길에서 다음 여행을 계획하며 가라앉기 시작한 마음을 흥분 상태로 바꾸기도 한다.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다음 여행을 위해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함이기도 하겠지.


이번 여행에서는 여행지에 대한 낯섦과 배움보다는 낯선 이들과의 여행이 더 기억에 남는다. 짧은 여름휴가 동안 많은 곳을 가고 싶어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다.


도착지에서 만난 여행자들은 총 31명. 우리는 가장 '젊고 어린' 편에 속했다. 여행 내내 '젊은이'라는 호칭을 받으며 지내다 보니 20대가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넘어서는 세계 8대 불가사의라는 한국의 '패키지여행'은 친구 모임, 부부동반, 가족동반 등 다양한 분들이 모였고,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한국 아줌마'였다.


그들의 여행은 현지뿐 아니라 함께 온 사람에 대한 관광도 포함되어 있는 듯했다. 한국 사람의 문화인지, 한국 아줌마의 문화인지는 헷갈리지만 어쨌든  패키지여행에 우리 부부가 포함된 것만은 확실했다.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그들은 곧 하나둘씩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신혼부부야?"

이 질문은 열 번도 넘게 받았다. 본인들에 비해 훨씬 어려 보였던(?) 우리의 나이를 가늠하지 못했는지 일단 첫 번째 질문은 모두 그것이었다. 그때마다 똑같은 대답을 해야 했고, 그 후 나올 질문이 무엇인지 알았던 우리는 질문 전에 대답을 해야 하나 질문을 기다려야 하나 곤욕스러웠다.


함께 식사를 해야 했고, 버스도 타야 했다. 그들은 우리 부부의 움직임, 우리 부부의 나이, 우리 부부의 가족사가 궁금해 어쩔 줄 몰라했다. 한 사람이 질문을 시작하면 우리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귀를 기울였다. "아 그래~에."하며 궁금증을 해결했다는 듯 돌아섰다. 심지어 "야야~ 우리가 잘못 봤어. 신혼부부 아니래~", "왠지 여보 여보 부르더라니~"하며 자기들끼리 나눈 대화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만큼 컸다.


궁금한 게 해결되지 않은 사람은 타이밍을 놓칠세라 다음 질문을 퍼부었다. 마지막 날까지 미처 묻지 못하고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다는 듯 조심스럽게 "신혼부부야?"라는 질문을 받았으니 끝까지 우리는 그들의 관심 대상이었음이 분명하다.


심지어 나이차가 많을 것 같지 않던 아줌마 넷은 우리를 나이 어린 동생 대하듯 함부로 말하는 통에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부탁이 아닌 부려먹기식 요청에 응하지 않았더니 오히려 그들이 불쾌한 표정을 지어 당황하기도 했다.


패키지여행이란 함께 가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질문 공세가 포함된 것인지 처음 알았다. 물론, 이전에도 패키지여행을 가봤지만 이렇게까지 탐닉의 대상이 되어보기는 처음이다. 그래서 낯설었고 혼란스럽고 조금은 힘겨웠다.


우리는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짐했다. 나이가 더 들고 진정한 아줌마 아저씨가 되어도,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도 낯선이 들에게 무례하게 사생활을 캐묻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혹시라도 다음에 우리가 가는 패키지여행 속에 그들이 구매하지 않은 '사생활 질문'이라는 항목을 우리가 끼워 넣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고 당분간, 패키지여행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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