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금이대로 쩡 Sep 03. 2018

여행, 소매치기범의 트라이앵글에 갇히지 않기위해

여행 짐을 싸려고 이것저것 찾다 복대를 발견했다. 이 복대로 말할 것 같으면, 살집을 숨기기 위한 것도 아니오, 허리를 받쳐주는 것도 아니다. 순수하게 복대에 차는 지갑, 그 '복대'다.


오래전, 유럽 여행을 갈 때 한참 유행하던 히트 상품이었다. 유독 소매치기가 많다는 유럽 여행자들에게 입소문이 난 상품이라 한국 사람들에게는 흔하디 흔한 물건이었다. 요즘 배낭 여행자들은 어떻게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비상한 재주를 가진 소매치기범이라도 복대에 찬 지갑과 돈을 훔쳐 달아나는 일은 그들에게도 여전히 난제 아닐까?


나 역시 핫한 아이템을 써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가장 적합한 제품으로 골라 매고 왠지 모를 뿌듯함을 안고 배낭여행을 떠났다. 이 복대만 보면 눈이 동그랗던 이태리 레스토랑의 남자가 생각난다.


피자를 먹고 계산을 위해 옷을 들추며 복대에서 돈을 꺼내자 서빙 보던 그는 "아유 코리안?"하며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다. 한국 사람들만 복대를 차고 온다며 그거 정말 효과 있냐고 박장대소를 한다. 나 역시 내 모습이 할머니가 허리춤에서 돈 꺼내는 것 같아 빵 터졌다. 한참을 웃다 눈물을 닦고 복대가 얼마나 안전한지, 구성이 어떤지 자랑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여행자에게 소매치기범이란 가장 피하고 싶은 존재이니 복대 정도는 무리한 준비는 아니겠지?!


소매치기범.

이태리 나폴리에서 제대로 된 소매치기 팀을 만난 적이 있다. 나폴리는 이태리에서도 프로 소매치기범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론리플래닛에서도 역시 소매치기범에 대한 가이드가 나와 있을 정도이니 유명하긴 유명한 곳인가 보다. 숙소에서 만난 많은 여행자들이 나폴리에서 빈손으로 돌아왔다며 가지 말라 말렸다. 하지만 나폴리의 해변과 관광지를 포기할 수 없어 복대를 단단히 둘러매고 그곳으로 향했다.


선입견을 가져서인지, 나폴리의 첫인상은 왠지 '소매치기범의 음침한 눈빛' 같았다. 중요한 것들은 복대에 넣고, 나폴리에서 절대 매면 안 된다는 백팩에 간식거리와 여행 책자 등 중요하지 않은 것들만 넣어 타겟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안이한 생각을 했다.  


기차역에서 나와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던지 (사실 그들에게는 아주 적합한 먹잇감이었으리라. 동양여자에 백팩이라니!!!) 키가 190은 되어 보이는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미소에 반했던가? 훗!


그 미소와 친절을 순수하게 받아들인 나는 버스 번호까지 알려주며 타라는 그의 말에 '나폴리는 친절한 도시'라며 30분도 안되어 첫인상을 업데이트 해 버렸다.


버스를 타고 5분을 달렸을까? 분명 사람이 많지 않은 버스를 탔는데 나는 왜 출근 버스 같은 기분이 들까 하며 뒤를 돌아보려는데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3명의 남자가 내 주변을 감싸고 서 있었다. 물론, 뒷자리는 키 190의 친절한 남자였고 고개를 젖힌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거봐. 조심했어야지!'하는 눈빛과 '넌 꼼짝없이 갇혔어!'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백팩에 든 빵과 우유는 그들의 타겟이 아닐 터, 복대를 풀어가는 건 아닐까 무서웠다. 특별히 나폴리 여행에서는 크로스로 맨 나의 복대가 그들에게는 털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자 아찔했다. 동시에 창밖에 보이는 나폴리 풍경이 하나씩 검게 그을리기 시작했다.


세 남자의 트라이앵글에 갇혀 온갖 노력을 해 보았지만 뚫고 나가기 쉽지 않았다. 


190의 모델같은 키에 미치도록 잘 생긴 이태리 남자의 미소. 그것을 다시 보는 순간, 왠지 힘이 났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익스큐즈미!!!"

하며 그들을 밀어냈다.


트라이앵글을 벗어났다.

순간! 나도 모르게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소매치기범이요!!! 소매치기범!!!"


그렇게 소리치는 한국말을 알아들은 걸까? 그들은 다음 정류장에서 도망치듯 내리고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복대를 확인했다.

'휴우~! 다행이다.'


키가 큰 소매치기범의 단점은 두 팔 사이의 여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와 세트인 똘마니 둘은 키가 작아 여백을 메워주지 못했다. 그 여백을 뚫고 나오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힘을 써본 경험이 아닌가 싶다.


어깨에서 백팩을 내렸다. 백팩은 마치 지퍼가 고장이라도 난 듯 총 11개가 모두 열려있었다. 별 것 없던 내 가방에 손을 넣고 얼마나 휘저었는지 꽤나 애를 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어쩜 그렇게 손이 들어온지도 모르게 잘 뒤적거렸는지 프로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역시 달랐다.


트라이앵글에 갇혀서 본 소매치기범의 눈빛을 기억하며 이번 여행에서도,

소매치기 조심.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일상을 버티기 위한 묘약이라고나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