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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Dec 04. 2020

0에서 1을 맞이하는 마음

벌써 12월. 한 해가 이렇게 또 흘렀구나.


이제 나이에 민감하지도, 한 해가 가는 것에 민감할 나이도 아니다. 그저 잔잔히 흘러가는 시간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큰 파도와 만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여전히 마음은 20대 청춘이라는 엄마의 말씀처럼 나 역시 젊은 나이가 아닌가 착각할 때도 있다. 10년에 한 번씩 앞자리 숫자가 바뀔 때도 잠시 흔들리지만 길지 않은 시간만에 제자리로 돌아오니 그 또한 그대로  좋다.


어른이 되었다는 건 묘하게 매력적이다. 흔들리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다시 이전의 자리로 돌아오지 않아도 그곳이 내 자리라는 체념을 알고 있기에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다.

<역삼역 어느 카페 트리>

카페에서 주문한 음료를 기다리며 내 키보다 더 큰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나 한 해가 가고 있음을 느낀다.


바람처럼 왔다 바람처럼 간다는 인간의 생이 지나고 나면 짧디 짧다고들 한다. 긴 시간 동안 누군가를 만나 헤어지고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 헤어진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수많은 인연들을 거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겠지. 마치 지나간 시간이 내 것이 아닌냥 낯설다. 아직 생을 마감하는 나이는 아니지만 언젠가 짧디 짧은 생을 피부로 느끼겠지.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동생, 조직에서 케어 받던 주니어였는데 이제는 나보다 더 걱정되는 이들이 많다. 나를 딸로 만들어 준 나의 부모, 마냥 나를 지켜만 줄 것 같던 나이 많은 형제자매, 이제 갓 사회에 내던져진 조직의 주니어가 그들이다.


겨울이 나를 이렇게 잔잔하게 만드는구나. 연말이 나를 이렇게 흔드는구나.


십여 년 전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자신에게 선물을 주겠다던 친구가 휴가를 내어 5박 6일 일정으로 미국 여행을 갔다. 친구지만 정신이 이상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멋진 선택이다. 해가 갈수록 걱정이 많아지고 주머니에서 지출되는 큰돈에 흔들리는 가계를 생각하면 우리 나이 사람이 쉬이 할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그때도 피 끓는 청춘이라 칭하기는 어려운 나이였다. 그의 호기로움이 뜬금없이 부럽다.


12월. 하루하루가 가는 것이 새삼 아쉽다. 2020이라는 숫자가 왠지 친근하다. 해가 지나 0에서 다시 1로 시작하는 기분이 드는 건 숫자가 주는 감성적인 코드인가.


새로운 1을 맞이하는 마음이 오늘따라 새롭다. 새로운 1이 오늘따라 너무,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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