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아들과 2살 아들 손으로 잡고 집으로 가는 길 발걸음이 무겁다. 눈물 멈출지 않을 거 같아서 입술을 굳게 다문다. 달이 어느 날 보다 밝게 빛나고 있다. 밝게 비추는 달처럼 힘든 시간이 지나가겠지? 왜 나는 동생에게 편지를 줬을까? 그때 알지 못했다. 글쓰기에 내 감정이 담겨 있다는 걸... 나는 우울하고 슬픔이 많은 사람이다. 육아를 하면서 어린 시절 아픈 과거 기억이 다가왔다.그 기억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머리가 무겁고... 벗어나고 싶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기억을 글로 묶어두고 싶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4살 때 돌아가신 아빠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싶어 편지를 쓰고 동생에게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주었다.
그날 오전 ㅡ일을 하고 있었다. 핸드폰 10통 넘게 엄마에게 전화가 왔었다. 전화 걸어보니 누구보다 강한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울고 있다. 동생 이름을 여러 번 부르고..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끊는다.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가니 엄마와 이모가 울고 있다. 시간이 지나서 이모가 입을 열었다.
" 끈으로 세탁기 쪽에서 00가...."
자살시도를 했다. 죽고 싶은데 죽을 용기가 나지 않다는 거다. 마음이 아프다. 나만 상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동생이 상처가 깊었다는 걸. 아님 알고 있었는데 그 힘든 기억을 꺼내고 싶지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고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친할머니 댁에 나와 동생은 맡겨졌다. 180 키에 마른 체격이 있는 삼촌이 있었다. 목소리는 굵고 거칠었다. 할머니 댁에 있을 때 도망치고 벗어나고 싶었다. 삼촌은 할머니와 나와 동생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무섭고 두려웠다. 엄마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나를 데리고 왔다. 동생은 그러지 못했다. 할머니는 초등학교. 중학교.. 계속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동생 데리고 올라가라고 했지만..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며칠 전 엄마랑 산에 갔을 때 제일 후회되는 게 동생을 데려오지 못한 게.. 제일 후회된다고 했다. 제일 중요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마음을 아파하셨다. 그때 엄마, 나 , 남동생., 할머니.. 상황이 힘들었다.
누구에 잘못이 아니었다.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신 날 몸빼바지 주머니 쨍그락 쨍그락 동전 소리만 났다.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하염없이 걸어가셨다.. 집에 도착하니 한쪽 슬리퍼가 찢어서 있었다. 그때 엄마 나이 24살이었다. 그때 지금처럼 어린이집 없었다. 여자혼자서 남매를 키운다는 걸 쉽지않은 상황이었다.
동생에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태어나자마 엄마의 사랑을 받기도 전에 할머니 손에 맡겨졌고... 사랑보다 폭력을 20년을 살아왔다. 힘든 시간을 잘 견디고 온 동생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엄마, 나 , 동생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힘든 시간을 견디고 살아왔으니 이제부터라도 과거의 상처가 치유가 되어 남은 미래는 행복했으면 좋겠다. 닫힌 남동생의 마음을 열고 싶다. 100일 기도.. 친구에게 들었다. 출근하기 전 동생 방에 편지를 쓰고 안부 글귀를 써서 거울에 붙였다. 화분도 넣고 좋은 책도 넣었다. 가족들은 그렇게 해서 달라지겠냐고 했지만 귀를 막았다. 달라지듯 안 달라지듯 중요하지 않았다. 동생의 힘든 시간을 견디고 살아온 날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고 가엾어서 눈물이 난다. 그 힘든 시간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가족품이 그리웠을까? 어두운 터널 잘 견디고 살아온 동생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그런 동생을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