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가 태어났는데 가게가 망했다.

소중한 사람

by 감사렌즈

(8년 전)

오전 10시쯤 회사 사무실에서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급하게 달려가는 목소리로

(엄마)"피자가게 꼭 계약해라. 놓치면 안 된다."

갑자기 예고 없는 전화에 어리둥절하다가 허겁지겁 사무실로 나왔다. 남편에게 전화해서

(나) "가게를 꼭 계약하자"

우리 동네에서 하나뿐인 피자가게라서 매장 안은 사람들로 붐비었다. 고민할 필요 없이 무조건 해야 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우리 부부는 가진돈 없이 결혼했다. 자릿세가 1억이 넘는 큰돈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친정엄마, 이모에게 손을 내밀었다. 감사하게도 큰돈을 빌려주셔서 피자가게를 계약할 수 있었다. 개업 후 손님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주말이면 주문이 밀려서 점심을 굶는 일이 많았다. 몸은 힘든지만 감사했다.


그러다가 피자가게 3년이 되었을 때

(남편)"가게 하나 더하자. 떡볶이집 보고 왔는데 사람이 많아.

(나)"지금 피자가게만 하자."

반대했지만 친형과 함께 피자가게보다 비싼 자릿세를 계약했다. 한숨이 푹푹 나왔다. 한 달, 두 달, 세 달이 되어가면서 남편은 고개를 숙이는 일이 많아졌다.




떡볶이 가게 쉬지 않고 일하지만 어려웠다.

튀김 한다고 하면 하나씩 재료 손질 후 100도씨 끓는 기름에 튀김을 넣고 건진 후 빼야 한다. 김밥도 밥, 시금치, 당근.. 손이 가는 일이 많았다. 손님이 많다고 해도 직원 3명이라서 인건비를 줘야 했다. 재료비 , 인권 비등.. 주면 주머니 남는 게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마이너스로 가고 있었다. 깨진 항아리에 구멍을 피자가게 돈으로 막았다. 그러다가 결국 항아리는 깨지고 말았다. 그 당시 첫째 아들 3살이고 뱃속에 둘째 아이를 있었다.(둘째 임신 8개월 ) 출산을 앞둔 시기라서 예민했다. 그래서 그런지 남편의 그림자만 보면 입을 꼬매버리고 싶었다. 얼굴만 보면 날카로운 말 날아갔고 분이 풀리지 않았다. 속에서 불이 부글부글 끓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 아이 키우려면 많은 돈이 필요한데..


돈 벌기 위해서 30분 정도 거리에 직장을 다녔다.

남편은 바빠서 집안일 도와줄 수 없었다. 육아, 집안일 등 내 몫이었다. 퇴근 후 3살 아들과 놀이터 가고. 빨래를 개는 도중에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허겁지겁 일어나 회사를 가는 날이 많았다. 날이 갈수록 몸이 무거워지니 첫째 아들과 집에서 있고 싶었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출산 전까지 다니면 몇백만 원이 넘는 돈이다. 매일 출근하면' 퇴사하자. ' 마음속에 외침이 있었다.




퇴사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버스였다.

버스를 타면 사람들 숨 쉴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입냄새, 아침의 식사를 하고 남아있는 청국장, 향수 냄새 등이 코로 모아졌다. 비좁은 사람 틈에

끼어있으면 숨이 막혀서 얼굴이 현기증이 나서 주저앉았다. 그때 내 어깨를 툭툭 쳤다. 키가 큰 남자분이었다. 자리를 양보해 주셔서 비좁은 공간을 빠져나와 의자에 앉았다. 창문을 열었다. 꽉 막힌 냄새가 빠지고 상쾌한 바람이 들어오니 살 거 같았다. 그런 시간이 계속되니 지쳐갔다.


어느 날 아침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란 버스 오고 있는데 뛰어들면?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볼록한 배를 보며 어루만지면서 눈물이 흘렀다. 그러면서 나를 위로했다.


'지금 많이 힘들구나. 그래 그럴 수 있어.

만삭이 몸인데 회사를 출근하니 얼마나 힘들고 지치겠어. 집에 돌아오면 첫째 아들도 돌봐야 하니. 힘들지만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도 살아보자 '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까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옆에서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첫째 아들도 있다. 소중한 가족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힘든 순간 손을 잡아준 둘째 아들에게 고맙다. 남편은 빚을 감당할 수 없어서 떡볶이 가게를 폐업신고를 했다.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지만.. 원망이 꽃이 피고 있었다.

© russotc0, 출처 Pixabay


그때 꿈을 꾸었다.

통장이 열리면서 초록색 숫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이던 숫자가 멈춘다. 통장 뒤편에서 작게 보이는 한 사람 있다. 가까이 걸어가 보니 무릎 꿇고 어깨가 흔들리면서 울고 있다.


남편이었다.

그 순간 남편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누구보다 돈을 벌고 싶은 사람도 , 우리 집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남편이었다. 초록색 숫자가 멈추는 순간.

돈은 숫자다. 하지만 돈에 연연해서 사람은 잃어버리면 안 된다.. 다음날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남편과 아파트 근처 걸었다.


(나)"서른다섯이야. 젊잖아. 둘 다 건강하니 돈을 벌 수 있어. 다시 시작해보자. 비싼 수업료 낸 거라고 생각하자."

(남편)"여보 미안해."


그날 이후로 우리 부부는 열심히 살아갔다.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 아이들이 있었다. 엄마, 아빠.. 이름으로 갖게 해 줘서 감사하고 마음이 단단해지는 법 배웠다.


인생 살아가면서 행복한 일도 있지만 불행한 일도 많다. 지금도 역시 행복과 불행 연속이다.

예고치 못한 일이 찾아오면 비싼 수업료 낸 그날 떠오르며 다시 일어난다. 그동안 보지 못한 소중한 보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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