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가을
"여보 나 숨을 쉬고 싶어.. 가슴이 답답해.. 제발 숨을 쉴 수 있게 해 줘~"
냉장고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말했다. 남편을 고개를 숙이며 아무 말이 없다. 매번 나에게 미안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어머님 죽음.. 어깨가 축 쳐진 아버님이 뒷모습.. 몇 달만 우리 집에서 아버님 모시고 살자고 했다. 그러자고 했지만.. 하루하루가 지옥 열차였다. 그날도 그랬다. 안방에서 4살 아들과 1살 아들 잠을 자고 있었다. 아버님은 거실에서 소주 한 병 넘게 드시고 안방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일어났다.문틈사이로 아주버님과 신랑이 아버님의 양팔을 잡고
"주무세요.. 잠을 자고 있어요.."
그때 아버님 말이 기억나지 않는다. 문을 열었을 때 울부짖는 한 마리 늑대였다.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어서 문 닫았다. 그 후 문을 열지 않았다. 매일 저녁마다 예측할 수 없는 아버님의 술주정이.. 지울 수 없는 시간으로 저장이 되었다. 저녁마다 지옥 열차를 타야 하니 발걸음이 무거웠다. 점점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머릿속은 이해해야지 하지만 마음은 시퍼렇게 멍이 들고 있었다. 멍은 목까지 차올랐고.. 숨을 쉴 수 없도록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기억은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도록 만들었다. 불면증이라는 녀석이 찾아왔다. 잠을 편안하게 자고 싶지만 불안과 긴장 속에서 잠을 잘 수없다. 새벽에 가슴을 치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나 너무 힘들어... 숨이 나오지 않아서 죽을 거 같아.
엄마에게 말해도 아무 말이 없어.. 엄마는 내가 죽어야 .. 올 거야.."
부정적인 감정을 채워졌다. 집 근처 10분 거리에 사는 엄마도 오고 싶지만 시아버님 때문에 오지 못했다는 걸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다음날 남편과 함께 5분 거리에 내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최여진 씨 들어오세요."
남편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갔다. 청진기로 등을 진찰하고 최근에 있었던 일 물어본다.
"화병입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가볍게 가지세요. "
화병이라는 말에 눈물이 난다.
내 마음이 이렇게 힘들데.. 그동안 몰랐구나. 참으면 저절로 괜찮아 질주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생각했다. 이제껏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남편과 아버님이 아픈 것보다 내가 참으면 되지. 내가 고생하고 다른 사람이 마음이 편해야지.. 화병이라는 의사 말에 그 말 바닥에 던져버렸다. 이제 이렇게 살지 않겠어. 내가 살아야겠어. 이제 그런 말 그만해. 참으라고. 지금까지 어린 시절부터 매일 참고 살아왔다고.... 꺼져버리라고.. 넌 알고 있잖아.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또 나에게 그런 말 할 수 있어.
난 이제부터 달라져야겠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두 아이들이 있어.그때 그랬다. 소심하고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꾹꾹 참고 살았는데 '난 두 아들의 엄마야. '마음속에 부적을 붙이면 용기가 생겼다.
남편에게 말했다.
"더 이상은 아버님과 사는 게 힘들어."..
남편은 아버님께 말씀드렸고.. 따로 분리해서 살기로 했다. 그 후 거짓말처럼 화병이 사라졌다. 살면서 나보다 다른 사람을 챙기는 게 먼저였다. 그날이후로 내 감정이 먼저고 내가 우선이었다.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동안 미련하게 많은 것들 참으면서 살았다. 가족들이 상처 주는 말. 가시 돋은 말. 등.. 가족이니깐.. 하면서 넘어갔다. 그 후로 감정의 소리를 듣고 말하는 연습을 했다. 처음에 그 말 꺼내는 게 목에 걸린 가시처럼 느껴졌다. 한번 어렵고 두 번째는 조금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 번째.. 두 번째보다 편안해졌다. 조금씩 말하니 이제는 감정을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