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아버리고 싶다. 괘씸하고 분하다. 인간탈 쓰고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해를 하려고 해도 도저히 용서되지 않는다. 상처를 입고 나서 두 다리를 뻗고 잔적이 없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죄인을 처럼 숨어서 있어야 하는 거지?
상처의 기억이 되살아 난 건.. 여름날 7살 조카가 왔을 때였다. 그때 그날 조카나이였을 때다. 인형 같은 외모에 조카를 보고 있으면 사랑스럽다. 두 아들 손을 잡다가 보드란 살결에 조카손을 잡고 걸어간다. 아들과 딸이 다르구나. 산에서 놀고 집으로 돌아왔다.
과거의 상처는어제일 처럼 생생하다. 엄마가 친정할머니에게 맡겨지고 정미소 앞에서 남동생과 함께 놀고 있었다. 한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과자를 주었다. 땅에 떨어진 사탕을 주어먹던 나로 선 과자는 큰 선물이었다. 아저씨는 남동생에게 정미소 앞에서 사람이 오는지 보라고 했다. 정미소 안으로 데리고 가서 누우라고 하고 과자를 먹으라고 했다. 너무 어려서 몰랐지만 , 그 사실을 숨겨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이불속에서 숨어 있어도 기억이 떠나지 않고.. 누가 알면 혼날까 봐 두려웠다.
세상은 미웠다. 늘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는 게 두려웠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동문서답하지 말라는 말하자만. 눈은 바라보는 게 쉽지 않다. 차라리 투명망토를 쓰고 사라지고 싶었다. 그 후 상처는 끝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때 엄마는 호프집 가게 하셨다. 다락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검은손이 다리를 만졌다. 검은 그림자는 몸을 더듬으면서 만졌다. 손을 뿌리치고 치웠지만 계속해서 다가왔다. 소리를 내면 당장이라도 검은 그림자가 덮칠 수 있어서 큰소리를 낼 수 없었다. 엄마가 미웠다. 어떻게 술 취한 아저씨 내 방에 두었을까? 성추행 당했던 기억 계속해서 따라다녔다.
그 후 두 번째 성추행 당했던 적 있다. 가족행사로 큰 삼촌댁에 놀러 갔다. 오후에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엄마는 혼자서 날 두고 가게로 가셨다. 많은 친척들이 있었지만 단 한 명도 날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잠이 들었는데 검은손이 다가왔다. 겁이 나서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상처 기억은 아무에게 말하지 않았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꼭 내 잘못인 거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로 큰삼촌이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미움의 뿌리가 자랐다.
미움이 커질수록 몸과 마음이 구멍이 커졌다.
상처를 아들이 감싸 안아주었다. 7살 아들이 내 배에 손 올렸다. 돌덩이가 올려진 것처럼 느껴졌고 숨이 가빴다. 아들이 안으려고 하니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화를 냈다. '왜 화를 내는 거지.' 아들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베개를 껴안고 잤다. "엄마 힘내요..."따뜻하게 말했다.
아들의 따뜻한 눈빛 은 과거의 상처 어두운 방에 한줄기 빛이었다. 상처가 내 일상이 침범하지 않도록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세 사람을 용서하기 어려웠지만. 나를 위해서 용서를 한다.
글 쓰려고 하니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게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이 말이 나를 붙잡았다.
은유작가 - 글쓰기의 최전선
"자기 고통을 자기 언어로 설명하는 일이 가능해질 때 고통으로 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
고통의 시간을 길어 올렸다. 길어 올렸지만 고통이다. 그날 기억 다시 떠오르면서 모니터에 담는다는 건..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학인 말이 공감이 된다.
" 쓰기는 힘들었지만 쓰고 나니 힘이 생긴다."
10월 자전거를 타고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듣고 가다가 자전거를 멈추고 눈물 닦으면서 걸어갔다. 김서영 작가의 <눈물도 빛이 만나면 반짝인다> 인터뷰에서 " 저는 제 책이 캐비닛 같다고 제 상처가 잘 정리가 돼서 캐비닛에 들어갔고 상처와 내가 분리된 느낌..."
나의 아픔을 묻는 게 아니다. 상처 꺼내서 잘 정리하고 분리하는 것이다. 더 이상 내 일상에 침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멈추고 끌면서 눈물 흘렸다. 묻었두었던 상처를 꺼내 캐비닛이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더 이상 내 일상의 침해하지 못하도록 상처를 정리해서 캐비닛에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