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실하다.
아, 정확하게는 성실하다기보다는 성실하다고 느끼고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잠 자체는 많지만 일어나기는 정말 무진장 잘 일어난다. 지금은 좀 힘들 때도 많이 있긴 한데 예전에는 정말 살짝만 깨워도 벌떡 일어난다. 지금 우리 첫째가 그렇게 잠은 많이 자지만 일어나는 것은 기똥차게 잘하는 것을 보면 역시 내 아들답다는 생각은 든다. 물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어나기가 성실함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남보다 이건 잘하니까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일찍 일어나는 시간을 활용해서 신문을 읽기 시작했고 이제는 신문을 보지 않으면 아침이 굉장히 어색할 정도이다. 헤헷 이렇게 보면 뭐 세상 성실한 사람 같지?
남자들은 다 그렇듯...
군대가 사람 만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역시나 군대 다녀와서의 학점은 좋았다. 2점대를 마지막으로 군대를 갔었는데 돌아와서는 4점대인 것을 보면(결국 3점 초중반으로 끝났지만 ㅋㅋ) 역시 남자 놈들은 군대를 다녀오긴 해야 한다. 자아성찰의 시간이라고 할까? 좀 구세대적인 마인드이긴 한데 거기서 정말 '인내심'을 배우고 왔던 것 같다. 대체 내가 이걸 왜 하고 앉아있을까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래도 할 만했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이야깃거리도 많이 만들어 왔으니 뭐, 동의하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 체득된 것이 아마도 뭐든 '빠르게 실행' 하는 방식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리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던 성격이었는데 이때 180도 바뀌긴 했다. 군대 가서 일을 해 보니 아무 말도 안 하는 사람은 진짜 아무것도 안 해주더라.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말을 하고 하고자 하는 일은 그 즉시 해야 성에 찼다.
회사도 나름대로 열심히 다녔다.
성과가 엄청나게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는 일을 했던 것 같고 부서 내에서도 나름 성과를 인정받았으며 상위 고과를 받아서 신입사원 교육만을 담당하는 전임교수 역할로도 파견을 갔었다. 입사하고 교대근무를 할 때 말고는 지각이라는 것을 해 본 적도 없고 항상 한 시간 이상은 일찍 출근을 해서 업무를 정리했었다. 나름 부서 안에서는 어떤 업무도 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이자 몇몇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잘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고 자부했다. 실제로 그 자부심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물어보는 것보다 나한테 물어보는 사람이 월등히 많은 것을 보면 말이다.
돈도 꽤 벌었다.
주식이나 코인 투자는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부동산 투자만큼은 항상 우수한 수익률을 남겼다. 어디 가서 강의를 할 정도로 수익률이 좋았는데 지금 생각을 해 보면 그저 시기가 좋았던 것이지 내가 엄청나게 잘해서 얻은 금액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에도 언급했던 내용인데, 실행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해서 가끔은 치킨을 먹다가 5억짜리 아파트를 덥석 사는 경우도 있었다. 친구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도 내 덕에 집 하나를 온전히 얻게 되었다. 어디 가서 손해 보진 않을 자신이 있었다. 돈에 있어선 말이다(근데 지금 주식은 왜 이모 냥이지...)
우물 안 개구리였다.
나름 대기업에, 서울에 집도 있고, 귀염둥이 아가들과, 이쁜 와이프...... 나름의 성실함이 내가 세상에서 상위 클래스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다. 내 나이에 이 정도면 충분히 훌륭하다고 생각을 했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 좋은 차나 더 좋은 곳에 집이 있는 사람은 그저 부모덕이거나 우연의 일치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을 했다. 길가에 그렇게 많은 외제차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도 '저런 건 법인 리스로 그냥 비용 처리하고 폼낼라고 사는 거야, 아니면 부모덕이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았는데, 어느 날 대학원에서 본 친구 하나는 내 생각을 완전히 달라지게 했다.
두 살 어린 친구인데 굉장한 부를 가지고 있었다.
집도 차도 시계도... 처음에는 그저 졸부라는 생각에 가까이하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같은 수업, 같은 조가 되어 토의를 하다 보니 웬걸, 나보다 알고 있는 것이 훨씬 많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심지어 나보다 훨씬 똑똑하기까지 하다니! 괜한 하느님 어택을 생각하고 있을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 형, 저는 돈 버는 건 그리 소질이 없어서 공부를 좀 길게 했습니다. 그나마 공부도 잘하지는 못해서 시험은 기본적으로 2번은 떨어진 거 같아요."
"공부를 못한다고? 네가? 너 서울대 아니냐?"
"맞는데, 사실 그건 뭐 아시잖아요? 다 잘하니까 저는 그리 잘하지 않았어요 시험도 항상 뒤에서 1~2등이었고"
"그래도 서울대는..."
이 친구랑 처음 술을 마실 때 그제야 명함을 교환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언제나 명함부터 교환을 하곤 하는데 처음에 수업 때 언듯 아는 사이로만 있어서 그리 필요성을 못 느끼다가 그제야 교환을 했는데 명함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Certification을 보면서 눈을 크게 떠봤다.
회계사, 노무사
'......'
"야, 이거 진짜 전부 딴 거냐?"
"네, 진짜죠~ 설마 그걸 명함에 거짓말로 파고 다니겠어요?"
"남들은 하나 따기도 힘든 건데 2개를 땄는데 공부를 못했다고?"
"형, 제가 다니는 회사에는 저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널렸어요."
뭐야, 이건 ㅋㅋ 한 명도 아니고 심지어 많다고?
난 그래도 쉽다고 하는 자격증도 제대로 딴 적이 없는데... 심지어 노무사는 회사를 다니면서 땄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하긴, 변호사+의사인 사람도 있는데, 뭔들 없겠나... 괜스레 마시는 술이 좀 더 쓰다는 느낌뿐이었다. 허탈했다. 쳇...
정확하게 정의를 하자면 '열심히' 산 것과 '성과 있게' 산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성과가 없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사실 '보여줄 수 있는 것' 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자동차, 가방, 시계 등등... 모두 보이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을까? 무소유가 아닌 이상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풀 소유를 원한다. 그게 사람의 본성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서 과연 얼마나 효율적으로 다가갔을까는 사실 나보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성공했다는 생각이다. 나보다 더 열심히 산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 나이 40이 되어서야 이해하게 되었던 하나의 슬픈 현실이다.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