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40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들

내가 바위가 아니고 계란이었구나


대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내 나이대면 많은 곳에서 비슷하게 했겠지만 초기에 학생회에서 민중가요를 가르쳐주곤 했다. 학교가 국립대라서 더 그런 게 심했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초반에 그 음악이 귀에 쏙쏙 들어왔는데, 고등학교 때까지는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춰 본 일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요즘 세대는 춤과 노래가 거의 베이식처럼 장착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때는 그랬다(아니... 나만 그랬나??) 아무튼 그 민중가요 중에 이런 문구가 나오는 노래가 있었다.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 친대도~~"


아, 민중가요라고 이야기해서 내용이 이상해지는 것이 아니니 참고하자면 난 이런 운동권과는 거리가 매우 먼 사람이다. 먼 정도가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이 노래가 위에 쏙쏙 박히고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맞다! 역시 나는 바위처럼 살아가야 해!'


뭐, 치기 어린 시절의 이야기지만, 그 이후에 군대를 가더라도 이렇게 바위처럼 듬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내 꿈이기도 했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남자라는 생각을 했었다. 왜 대부분 우직하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면 멋지지 않은가? 가끔씩 보는 누아르 영화에서도 총을 쏘는 장면조차도 우직한 그 모습들을 보면 멋져 보이는 것이 나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회사 생활을 한 지 이제 15년 차가 되었다.

나름 산전수전 다 겪어 봤다고 생각을 했는데 회사에 갈 때마다 적응이 잘 안 되는 것은 왜 이놈의 일이 도통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며, 매 번 정말 특이한 케이스가 이렇게 많이 나오냐는 것이다. 공장 근로자라고 생각하면 루틴 한 업무를 정말 오래도록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이건 매 번 다른 부서와 싸우고 오는 싸움닭 역할을 맡고 있으니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다른 사람은 하지 않으려고 하니 내가 그냥 나서서 싸우고 오는 편이 속 편해서 그냥 싸움터로 나갔다가 온다. 그리고 만신창이가 되어 다시 돌아온다. 


"아니, 대체 왜 내가 처음 말할 때는 안된다고 하다가 더 위에 사람이 말하면 된다는 거야?"

"다 그러는 거지 뭐..."

"그러면 처음부터 된다고 말을 하던가"

"사실 안 되는 것인데 이번만 된데자나"

"아니, 결국 그럼 되는 건데 나만 병신 같은 거잖아, 내가 말하면 안 해주고 다른 사람이 하면 해 준다고 하는 거고, 난 그게 제일 열받아."

"뭐 너만 그러겠냐, 다들 그런 생각을 하겠지"


매 번 이런 식이다. 

내가 말을 하면 절대 안 된다고 세상에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을 하고 그 위에 사람을 데려오면 갑자기 된다로 바뀐다. 근데 웃긴 건 그 이후로는 그전보다 룰이 더 빡빡해진다. 혈압이 더 오른다. 결재선 다 결재하면 2일이 넘게 걸리는데 난 당장 내일 해야 한다. 근데 이제는 결재를 다 맡아도 바로 안되고 그다음에 된다고 한다. 염병, 아무리 큰 기업이라고 하지만 일을 뭐 이따구로 하지? 절차만 이렇게 많아지는 게 망하는 지름길 아닌가?




"술 한 잔 하면서 풀어"


싸움닭이 돼서 만신창이가 돼서 돌아오면 집에서 내무부 장관님과 술을 한 잔 깃든다. 이상하게 나이가 들면서 회사 사람들하고는 아주 친해지기가 어려운데(아마 내가 집이 너무 멀어서 술을 마시다가 훌쩍 가버려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예 속 편하게 집에서 술을 마시는 편이 요즘은 편하다) 오히려 집에서 마시는 술은 부담도 없고 참 좋다. 막걸리 한 잔 깊게 마시면 속이 시원하면서 목이 간질간질한 것이 아주 그냥 끝내 준다. 그리고 내무부 장관님도 같이 마셔주니 이 얼마나 금상첨화인가?


"오늘... 내가 ~~~ 있었는데~~~"

"그 새끼들 다 미친놈 아니야?"


찰지게 답변해 주는 말을 듣고는 흐뭇해진다. 

적어도 뭘 말해도 내 편인 사람은 딱 한 명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라도 뭔가 해결이 되지는 않는다. 술을 마셔서 해결이 되었다면 벌써 한 트럭은 마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니 그냥 이렇게 한탄만 하고(누구는 한탄만 듣고?) 끝나게 된다. 내일 또 가면 싸움닭 생활을 다시 해야겠지? 이건 내가 조직의 장이 되더라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우린 왜 항상 누군가 공격을 하는 부서가 되었을까?




내가 바위처럼 단단한 줄 알았다.

내가 바위만큼 듬직한 줄 알았다.

내가 바위 같아 언제나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바위보다 더 단단히 있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사실 바위가 아니라 내가 계란이었지만 바위에 부딪혀도 쉽게 깨지지 않는 그런 흔하지 않은 계란이었던 것 같다. 내가 항상 갑이 아니라 을의 입장에서 부딪히기만 했었으니 말이다. 


오늘 깨지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오늘 프라이가 되지 않을 만큼 열내지 않았고

오늘 내가 계란이었단 사실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일을 했었던 사실을 곱씹어보며

아, 내일도 한 번 부딪혀 보자, 이런 다짐을 해 본다.

근데, 나도 아프다. 아픈데 그냥 깨질 수는 없어서 바위를 부숴버리던지 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40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