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를 부를 때 나는 이렇게 반응했어요
내가 굳이 대학원을 MBA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기도 하고… 평소 경영학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만큼 인적 네트워크의 확장을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결국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친해져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전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다들 목적이 비슷하다 보니 이러한 부분에서 하나 건너뛰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존댓말’이다.
아마 언어에서 존대를 하는 것이 있는 나라가 몇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이 한편으로는 대단히 예의 바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상황에서는 다소 불편함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싸울 때 보면 나이 많은 사람이 왜 자기에게 존대하지 않느냐고 화를 내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대체 왜 존대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복잡하게 언어를 만들어 놓은 선조들을 욕해야 하나 싶기도 한데, 적어도 이곳에서 재학생일 때는 그러한 부분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 그러냐고?
일단 만나면 당연히 처음에는 존댓말이다. 하지만 바로 물어보는 것은 ‘띠’를 물어본다. 맞다. 생각하는 그거. 참고로 나는 돼지띠다. 최근 나이는 좀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서 나이로 설명을 하는 경우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띠는 변화가 없다. 이곳에 오면서 띠 순서를 제대로 몰랐는데 이제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개띠’라고 하면 얼굴 보고 동년배면 바로 ‘형/누나’라고 하면 되고 ‘쥐띠’인데 동년배로 보이면 바로 반말을 하면 된다. 다른 곳에서는 불가능하더라도 이곳은 그게 가능하다. 선배들도 그렇게 하고 우리 역시 후배들에게 똑같이 한다. 물론 누군가는 그조차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난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은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놈의 존댓말이 뭐라고…
과거 월드컵 4강 신화의 히딩크도 이렇게 했었다.
운동장에서는 서로 반말로 하라고. 그렇게 하니까 유기적인 움직임이 좋아지고 서로에게 불편함이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괜히 눈치 보고 서로 존대하다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제대로 못하고 헤어지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본다. 그래서 보통 이렇게 진행이 된다.
“안녕하세요. 저는 xxx입니다. 혹시 띠가 어떻게 되세요?”
“안녕하세요. 소띠입니다.”
“85년생? “
“네 맞아요”
“오, 동생이네, 말 편하게 할게.”
“그러세요”
불편한가? 적어도 여기서는 잘 모르겠다.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 동생이고 형, 누나고 말이 점점 짧아지긴 한다. 그걸 다 용인해 주는 문화가 개인적으로는 너무 맘에 들긴 했다. 한국만큼 나이에 신경 많이 쓰는 곳이 없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은 편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한 학교의 문화가 고맙기도 했다. 사실 친해지면 금방금방 해결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한 학년에 100명이 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어려운데 파티션마저 쳐 있으면 너무 힘들지 않은가.
이렇게 친해진 우리들의 밤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