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

by 강동희



이 영화를 본지가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보는 내내 보랏빛 도깨비불에 홀린 듯 흥에 겨워 정신없이 음악에 엉덩이가 들썩이는 바람에 뒷사람에게 미안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한 라이브클럽에서 피아노를 치며 자신의 재즈클럽을 꿈꾸는 '세바스찬'과 연기자를 꿈꾸며 오디션을 보고 다니는 '미아'. 자신을 위로해주는 듯한 피아노 연주에 이끌려 들어간 라이브 하우스에서 우연히 둘은 마주치게 되고 다른 시간, 또 다른 공간에서 둘은 다시 한번 불완전하지만 꿈이 가득한 두 사람이 점점 완성되어 간다.



저 멀리 보이는 불빛 속엔 보랏빛이 춤추고 있다

이 영화는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멈추지 않고 노래하며 춤을 춘다. 당연히 그럴게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니까. 나는 조금 이 중점에서 벗어나 보려 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의 뒤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빛에 오히려 눈이 홀렸다. 라라랜드의 색은 단연코 '보랏빛'. 빨강에 가깝게 붉은빛도 아니고 파랑에 가까운 푸른빛도 아니고,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도 아니고 차갑고 냉담하지도 않다. 이도 저도 아닌 색이 그들을 포근히 안겨주는 듯한 느낌, 해가 지고 별이 반짝이는 저 높은 밤하늘도 아니고 수많은 조명들로 빛나는 우리가 사는 땅도 아닌 그 둘의 경계에서 은은히 아른거리는 보랏빛처럼 꿈을 이뤄내지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무너져버리지도 않은 채 이도 저도 아닌 듯한 두 사람에게 풍기는 어두운 색, 자신만의 본연의 색으로 매력이 넘치는 그들에게서 빛나는 빛. 이렇듯 이 영화에서의 보랏빛은 신비롭고, 몽환적이고, 특별한 색이기도 하지만 '세바스찬'과 '미아' 두 사람 그 자체의 색이고 그 둘이 살아가는 둘만의 세계의 색이기도 하다. 둘이 함께하는 순간엔 언제나 보랏빛이 함께했고 행복할 때도 슬플 때도 보랏빛이 함께였다. 둘이 다툼을 할 때는 강렬한 붉은빛이 나기도 했고 무언가 냉담할 때 초록빛이 나기도 했지만 결국 모든 빛은 섞여 하얗게 빛나지 않고 푸른 듯 붉게 은은히 보랏빛으로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들의 '라라랜드'는 왜 보랏빛이야?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보랏빛이 아니면 안 되기도 하다.



비현실적으로 냉담한 현실과 뜨거운 꿈 사이의 경계선에 그 둘이 있었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고 많이 보기는 했지만 그 장면마다의 의미, 감독이 원하는 바와 의도하는 바를 잡아내 해석하거나 연출의 완성도나 배우의 연기력을 판단하기에 지식과 재능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굳이 그렇게 영화를 해체하고 잘개 쪼개며 보고 싶지는 않다. 그저 느끼는 그대로 흘러가는 대로 내 눈앞에 존재하는 저 장면 하나하나를 느끼고 그 느낌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라라랜드'는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의 하늘처럼 보랏빛으로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어찌 보면 너무도 불완전하고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어중간하기도 한 색,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 보랏빛은 정말 환상적이기는 했지만 단연코 몽환스럽지 않았다. 오묘하지만 그 둘처럼 불완전하기도 하지만 너무도 완벽했다. 서로를 원했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위했고 그러므로 자신이 너무도 빛이 났다. 사랑은 가득했고 꿈은 넘쳐흘렀다. 매정한 현실에 서글프기도 하고 작은 오해가 서로에게 상처를 안겨주게 됐다. 작은 위로와 응원은 서로를 치유했고 깊어진 사랑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라라랜드'의 보랏빛 밤이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