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긴 날씨만 따뜻하면은 뭐든 다 피는 거니까
이 영화는 내게 우연히 찾아와 나를 흔들었다
'흔들리는 물결'의 후기는 길게 쓰고 싶은 마음이 없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먹먹함이 며칠째 가시지가 않는다. 이 영화는 잔잔히 흔들리는 물결이 멀리서 보면 멈춰있는 듯 보이지만 한 순간도 멈추지 않은 강물처럼 쉴 틈 없이 흘러 내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언제, 어느 순간에 그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는지도 모른 채 부슬부슬 내리는 이슬비처럼 조금씩 내 마음을 적시더니 어느샌가 내 마음은 온통 '연우'와 '원희'의 감정으로 가득 차 버렸다. 이 둘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어릴 적 여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자신만의 틀 속에 갇혀 모든 이와의 관계가 단절된 채 살아가는 '연우'와 그의 일상에 조금씩 훼방을 놓는 '원희'의 사랑이야기다. 어색한 첫 만남과 사소한 대화들로 인한 작은 상처들, 미안한 마음에 서로를 보듬어주며 싹트는 사랑이 무르익을 때쯤 찾아오는 헤어짐의 순간이 100분 남짓하는 시간 동안 우리 마음속으로 아주 천천히 흘러들어온다.
수많은 여백이 우리를 가득 채웠다
영화 내내 둘의 이야기 속에는 말과 말 사이에 수많은 여백이 존재한다. 다가오는 '원희'보다는 사람이 불편한 '연우'가 더욱이 말에 여백이 많았다. 서로에게 서툰 두 사람의 무의식적인 마음의 표현일까? 아니면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고 조금씩 다가가기 위한 노력일까? 아무래도 좋다. 그 여백들은 두 사람에게 더욱더 집중하게 해주었고 나를 바라봐주는 듯한 눈빛과 표정으로 인해 그들의 감정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물속 깊숙이 들어가 몸을 한껏 웅크린 채 눈을 감고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않은 채 그저 살랑이는 물을 느끼듯 천천히 두 사람의 마음을 느끼기 시작하자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나를 이리저리 흔들어놓았다. 서로의 여백이 점점 메워지며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눈빛엔 온통 서로만이 가득한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두 사람이 조우하는 순간 우린 모든 것을 느꼈다. 그 순간이었을까 내 안에서 넘쳐버린 감정은 도저히 숨길수 가 없었다. 가슴은 터질 듯이 두근댔고 숨은 가빠졌다.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고 그 사이로 수많은 감정들이 마구 섞여 들어와 커다란 바다를 이루었다. 멈춰있는 줄 알았던 마음에 작은 바람이 불자 우리는 세차게 흔들렸고 마음을 굳게 가두고 있던 둑이 터져 걷잡을 수 없이 서로에게 흘러갔다.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멈춰 보였던 강물이 세차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그 감정이 뒤섞여 하나의 드넓은 바다를 이루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난 이 넓은 바닷속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근데 연우씨 어디 가시는 중이에요?"
"원희씨 집에요."
"왜요?"
"보고 싶어서요."
"그럼 원희씨는요?"
"저는 연우씨 집에요."
"왜요?"
"보고 싶어서요."
그 사람을 잊을 수가 없다
영화 속 두 사람이 잊히질 않는다. 서툰 표현 속의 애틋한 마음과 흐릿한 눈빛이 점점 빛나지는 모습들이며 영화 속 모든 장소와 두 사람이 존재하는 공간의 분위기, 음악, 색감 그 모든 순간 하나하나가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두 사람의 따뜻한 사랑이 조금씩, 아주 천천히 흐르는대도 지루함이 없고 두근거리는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나는 점점 행복하게 변해가며 마음이 점점 깊어지는 두 사람이 너무 보기 좋았지만 그럴 수만은 없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뭇 내 쓸쓸해 보여 나도 그녀처럼 기적이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었다. 영화 초반에 '연우'의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가며 흘린 '원희'의 눈물은 사랑의 시작을 예감한 기쁨의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시작도 못한 채 끝날 것 같은 사랑에 대한 슬픔의 눈물이었을까? 나는 그 눈물이 기쁨의 눈물이었길 바란다. 누군가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이 이토록 애달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