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일상

by 강동희

주말 점심, 부모님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른 주말 아침 일어나 생각해 보니 집에 밥이 없다. 때마침 부모님께 드릴 물건도 있겠다, 점심이나 얻어먹으러 가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문제. 생각이 나자마자 연락을 했다. "집에 밥 있어요?", "응", "이따 열한 시쯤 갈게요.", "그려". 엄마는 지난주에도 만났지만 따로 사는 아들의 방문 소식이 달가웠던 모양이다. 두 번째 문제였다. 쌀쌀했던 날씨가 조금은 풀렸고 갑작스러운 추위에 갈팡질팡하던 단풍과 은행잎의 색은 짙어지고 있었다. 완연한 가을이구나 싶은 기분 좋은 날씨였다. 날이 좋을걸 예상하고 부모님과 근교로 나들이를 계획했었지만 최근 여러 번의 수술을 겪은 아빠의 체력이 신경 쓰였다. 어디든 오래 걸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에 나들이는 하지 않기로 생각했다. 세 번째 문제. 어쩌면 핑계로 보일 이유였지만 그저 아빠의 건강을 생각하는 자식의 올바른 마음이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귀찮음을 이겨내고 이것저것 챙겨 준비를 마친 뒤 집을 나섰다. 평소와 다른 마음과 기분이었다. 네 번째 문제. 부모님 댁을 가는 길은 정해져 있다. 단지를 나와 도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대로를 15분간 지난 뒤 우회전하여 동서를 가로지르는 대로를 5분간 지나 빠져나가면 나오는 아파트 단지다. 익숙한 길이지만 가장 빠른 길은 아니다. 그저 직진을 많이 하기 때문에 주로 이용할 뿐이다. 다섯 번째 문제. 평소와 다른 건 남다른 기분뿐이었다. 그럴 때 사건은 터지기 마련이다. 통행량이 많은 편도 4차선 도로에서 난 2차선으로 주행 중이었고 교차로에서 신호를 대기 중이었다. 신호는 초록불로 바뀌었지만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2차선은 직진과 좌회전이 가능한 차선이었고 가장 앞차는 주행 신호가 직진과 좌회전 동시 신호라고 생각했나 보다. 좌회전을 하려던 차가 교차로 집입 직후 비상등을 켠 채 후진을 하고 있었다. 여섯 번째 문제. 속에서 답답함이 솟구쳤다. 입에서 짤막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바로 차선 변경을 준비했다. 내 앞차도, 뒤차도. 일곱 번째 문제. 뒤차가 빠르게 차선을 바꿔 나를 앞질러 갔다 비어있는 3차선을 확인한 뒤 액셀을 밟은 뒤 찰나의 순간, 억. 쾅. 사고의 순간이다.


4차선에서 차선을 변경하며 진행해 오던 차와 충돌했고 내 차량은 범퍼와 라이트가 깨지고 상대 차는 운전석 차문이 길게 찌그러졌다. 다행히도 차량의 속도가 빠르지 않아 큰 사고는 면했지만 사고의 순간은 언제나 심장이 벌렁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빠르게 수습을 하고 보험처리를 하기 위해 차를 안전한 곳으로 옮긴 뒤 점심 약속을 미루기 위해 가족에게 연락을 했고, 사고 수습의 도움을 얻고자 친구들에게 사고를 알렸다. 나의 몸 상태를 걱정한 뒤 두 채팅방의 반응은 너무도 달랐다. 친구들은 인생의 경험이자 배움이요, 액땜이라 생각하라는 말이 오갔다. 보험처리나 사고 이후 비용에 대한 짧은 이야기도 오갔다. 반면 가족들은 차를 탓했다. "너랑 그 차랑 안 맞는 거 같아.", "그 차 느낌이 안 좋다. 니 차에 걸려있는 명태 조각 빼." 웃음이 났다. 이리도 차이나는 반응이라니 꽤나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결론을 먼저 얘기하자면 가족들은 사고의 원인을 내가 아닌 것에 두고 나를 탓하지 않으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하지만 사고의 원인을 다른 곳에 찾는다면 앞선 7개의 문제도 있다. 또 다른 핑계를 찾아보자면 중고로 그 차를 구매한 내가 문제가 되고 그 차를 살 때 말리지 않은 가족들도 문제가 된다. 전해줘야 할 물건을 부탁한 엄마도 문제고 부모님이 그 집에 사는 것도 문제가 된다. 더 과거로 가면 그곳으로 이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던 과거의 나도 잘못이고 운전을 하겠다고 면허를 따버린 것까지 문제로 따질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나의 출생과 부모님의 결혼까지. 핑계는 대면 댈수록 부풀어진다. 한 때 유행한 영상이 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손흥민, 황의조 선수의 프리킥 지분에 대한 말다툼 영상이다. 결국 자신의 출생까지 거슬러올라 많은 대중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물론 모든 사건사고는 여러 단계의 원인이 있다. 사고 당사자의 행동이 1차적인 원인이 될 테고 그 1차 원인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2차, 3차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원인을 사고를 벗어난 것에서 찾게 되면 그것은 사고의 원인을 회피하려는 핑계일 수밖에 없다. 가족들은 날 배려하고 위로하기 위한 핑계였지만 내가 그 핑계를 받아들이고 운전을 하고 차선을 변경할 때 더욱더 주의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고의 원인을 핑계로 회피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만 그 행동은 똑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또 다른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사고의 순간 갖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고의 문제에 대한 핑곗거리가 수도 없이 생각났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적반하장의 빌런 단역처럼 굴까 싶기도 했지만 결국 사고의 원인은 나의 부주의였다. 잘못을 받아들이는 것은 큰 용기나 다짐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그냥 일어난 일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한다면 결론은 쉽게 지어진다. 양자역학의 세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Anything that is possible will happen. 아무리 기이하고 터무니없는 사건이라 해도, 발생확률이 0이 아닌 이상 반드시 일어난다.' 그날의 사고는 이미 일어난 일이다. 결국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이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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