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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Oct 18. 2021

나는 19살이에요

https://www.yna.co.kr/view/GYH20191213001800044

"엄마! 나 수학은 그만하고 싶어.”     

고3 여름방학을 지나고 아이가 불쑥 불만 어린 목소리로 내뱉는다.      

문과 계열로 진학하는 본인에게 수학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수학은 수능 최저 과목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기에 더 이상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전략적인 선택을 존중해야 하지만 그래도 뭔가를 포기한다는 것은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딸은 해도 해도 늘지 않는 자신의 수학 실력에 질려 포기 선언을 했다. 중학교 진학하면서부터 고 3까지 포기할 만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지만 나름대로 버텨오더니 임계치에 다다른 것 같았다.  수학 포기가 모든 걸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잘할 수 있는 거, 더 집중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이라며 도와달라는 이야기에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모로서의 불안감은 계속되었다.

사실 아이의 발목을 잡는 건 수학뿐이 아니었기에.    

  

초등학교를 보내며 학원 대신 뛰어다닐 수 있는 방과 후 공동육아를 선택했다. 학원에 앉아 문제집을 푸는 것보다 자유로이 다니며 즐겁게 자유롭게 어린 시절을 보내야 한다고, 그것이 아이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말을 믿고 싶었다. 그 선택은 나에게 어떤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시 아이를 돌봐줄 양육기관이 필요했고 또 아이가 학습 분야에 있어서 그리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영민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자유롭게 생활하더라도 충분히 잘하리라는 생각이 은연 중에 작용했다. 그러나, 이는 너무 순진하고 막연한 믿음이었다. 성적과 등수를 올리려면 절대적인 학습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딸 아이는 너무나 평범한 아이라는 것을 중학교를 보내며 깨달았다. 중학교 입학부터 아이는 쏟아지는 평가와 경쟁에 지속적으로 열등감을 경험하였고 (아이보다는) 나의 자존감이 더 떨어지기 전에 학원을 선택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딸아이가 영어학원을 처음 갔을 때 반 편성을 위한 테스트를 보았다. 기초적인 문법이 엉성했던 아이는 낮은 점수를 받았고, 아이와 함께 상담을 받으며 나는 당연한 것이라고 낯 뜨거움을 가라앉히려 했으나 좀처럼 속상함이 가시지 않았다.     

‘용모는 모범생처럼 생겼는데 공부는 많이 안 했구나!.’라는 평가에 불끈 마음의 불덩이가 입으로 쏟아 나오려 했지만 아이가 다닐 곳이라 참았다. ‘이제부터라도 정신 차리면 잘할 수 있단다.’라는 말에 어찌 되었든 우리의 과거는 정신 못 차린 경험이 되어 버렸다. 속상함을 안고서 구차한 변명 한마디 안 하고 학원을 보냈다. 그런데도 아이의 영어 성적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열심히 해도 긴장감으로 인한 실수는 계속되었고 고등학교에서도 아이의 불안감은 이어졌다. 

  고등학교 진학 후 아이는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주는 학원을 옮기고 싶어 했는데, 사실 이것은 더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소통의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했다. 하루에 60~100개씩 단어를 외우며, 매번 평가를 보고 미통과시 재시험을 보며 더불어 강도 높은 문법과 독해 수업을 해야 했다. 아이는 주먹을 불끈 쥐며 의지를 보였지만 순간의 대견함은 일찍 영어공부를 시키지 않은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실력을 가리기 위한 테스트.

가끔씩 보내주는 테스트 결과를 보며 전화로 실장의 설명을 듣고, 영어 교재에 딸려오는 학원의 홍보 문구를 보았다.

 ‘자물쇠’ 반, ‘종일 자물쇠’ 반, ‘잠만 집에서 자면 됩니다.!’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보며 무게감이 가슴을 억눌렀던 경험도 있다. ‘우리 조금만 고생하자, 넌 잘할 수 있을 거야’란 말로 ‘SKY 캐슬’ 예서 엄마를 흉내 내지만 그 말이 아이에게 독이 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딸아이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학원을 다닌다. 대한민국의 많은 학생들처럼 학교를 마치면 얼른 버스를 타고 학원을 가며, 저녁을 먹을 시간이 빠듯하여 학원 근처에서 대충 챙겨 먹으며 학원에 가서 숙제를 검사 맞고 너무 많이 틀리면 재검과 재시험을 오가며 보강을 받고 10시가 되면 모든 것이 종료되어 귀가한다. ‘잠만 집에서 자면 됩니다!’란 말도 과분하여 대충 씻고 나면, 어마어마한 학원 숙제를 해야만 한다. 그렇게 고3이 지나가고 있다.      

 ‘엄마, 나 감기 걸린 것 같아. 몸이 아파!’ 

‘ 병원 들렀다가 별거 아니면 학원가! 알았지? 하루 빠지면 네가 더 힘들잖아.’


 생각과 다르게 말이 불쑥 튀어 나갔다. 전화를 끊고 내 말에 스스로 놀란다. 아이를 안쓰러워하면서도 학원에 빠질까, 지쳐 포기하는 전조 증상일까 봐 방어를 하는 나의 불안감을 마주한다. 어쩌면 이게 진심일지도 모른다..     

아이와 통화 후, 1시간의 퇴근길에서 나를 달랜다.      

‘의식과 생활이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다고, 네가 교사라도 너는 대한민국의 일개 학부모일 뿐이라고!’  

    

아이는 병원을 다녀와 쉬고 있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학원을 갈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잘했다! 아프면 쉬어야지. 어쩌겠어?’      

 아이는 학원을 갈지 말지 본인이 스스로 판단을 했다. 그 정도는 판단할 나이었다. 초등 저학년 때부터 일하는 부모님을 이해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은 알아서 해왔다. 병원 가는 일이나 준비물은 스스로 챙기며 3살 어린 동생을 살뜰히 보살폈다. 첫째답게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책임지려는 면이 강했고 잘 챙겨주지 못한 엄마의 마음을 따뜻한 위로로 채워주는 딸임을 잊고 있었다.      

내 딸이 가진 어마한 장점. 삶을 가꾸고 보살피며 일궈가는 힘이 있는 아이인데 성적과 입시의 불안에 짓눌려 내가 하찮게 여겼음을 반성한다. 


 아이는 19살. 아름다운 나이.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미래의 꿈에 대한 도전도, 멋진 이성에 대한 설렘도, 주위의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간절한 시기에 놓여 있다. 수능을 보기 전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스스로를 달래고 전력을 다하고 있는 딸아이에게 더 질주하라고 더 애쓰라는 말을 하지 않기를.

내가 부모로서 지켜봐 줄 수 있기를.

스스로 자처하여 괴물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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