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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Oct 24. 2021

효도하겠습니다.

나의 이웃 이야기 

                                                                                                            

잠을 자야 한다.

잠을 자지 않으면 안 된다. 억지로라도 잠을 자야 버틸 수 있다.

진수 씨는 작은 방에 빛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커튼으로 방어하며 온갖 짜증을 피우고 있다. 방문 밖 아내는 기척도 내지 못하고 살금발을 들고 이리저리 다니는지 가끔 물건을 치우는 소리, 설거지하는 소리만 들릴 뿐 조용하다.


한 때 남성미를 내뿜으며 남들의 부러움을 자아내던 이 몸은 이제 아무 쓸모가 없다.

아니다.

겨우 그 몸 하나만 쓸모가 있다고 해야 하나?

에라이. 모르겠다.

건강한 몸 하나가 재산이었던 청춘. 그때라면야 밑천이라고 하겠으나 이제 이 나이에 몸 하나 덩그러니 남은 건 쓸모없는 것만 남은 거 같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지 않으면 운전하다가 졸지도 모른다. 체력이야 자신 있었는데 한 순간에 낮밤이 바뀐 일을 하다 보니 맥없이 졸고 있는 노구(老軀)가 견딜 수 없이 싫어지고 있는 터였다.


“진수라고 했나? 처음에는 다 그래. 긴장되고, 피곤하고 말이지. 몇 달 해보면 적응될 꺼유. 몸 좋으니 적응되면 저기 저 젊은 사람 따라서 낮에 배달 알바도 하게 될 거고.. ”


“아이고 형님! 저 냥반이 60이 다 되어간다고 했는데 그게 말이나 돼요? 그러다 몸 상하면 병원비가 더 드는 나이요. 어쨌든 빨리 자기 하던 일 찾아가야지!, 진수 씨보니 험한 일 하던 사람 같지는 않고.. 코로나 땜시 잠시 어려워져 온 거 같은데...”


“야! 처음에 금방 그만둬야지 하는데... 그게 쉽냐. 저 나이에 여기까지 왔으면 많이 어렵다는 이야기지. 인마! 일찌감치 우리랑 친하게 지내믄서 인생의 씁쓸함을 즐기는 걸 배워야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울화통이 터졌지만 신입인지라 헛웃음만 짓고 말았다. 젊었을 때는 내 앞에서 찍소리도 못했을 족속들이, 나를 놀림감으로 이야기하다니...

누워 잠을 청하려 하는데 한심한 그치들의 이야기 장면이 떠올라 열이 나서 잠을 잘 수가 없다.


‘감히 나를... 나를...’


또다시 밖에서 아이들 노는 소리가 시끄럽게 나기 시작했다. 코로나 때문에 모여 있지도 만나지도 말아야 된다는데 아이들이 동네에 나와 논다. 서로 가까이 갈 수 없으니 멀리서 이야기하며 크게 말하고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리고 쿵쿵거리면서 뛰어노는 소리가 너무 귀에 거슬린다. 몇 주전부터 그 소리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잠을 자려고 뒤척이다 꼭 잠들 찰나에 아이들 노는 소리, 뛰는 소리, 공차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이놈의 녀석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진수 씨는 이불을 걷어 부치고 일어났다. 창문에 대고 소리를 몇 번 쳤으면 알아먹었어야지 이렇게 까지 하게 만든 조그만 새끼들을 생각하니 화가 멈추지 않는다.


“ 야~! 이 녀석들!”

힘껏 소리를 내지르며 정체도 모를 그 녀석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깜짝 놀란 아이들이 뒤돌아 소리 나는 쪽을 본다.


“어?! 관장님이다.! 효도하겠습니다. 관장님!”


갑작스러운 체육관 인사에 진수 씨는 움찔했다. 체육관을 정리하고 이곳에 이사 오고 나서는 자신을 아는 아이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너. 지섭이 어떻게 여기에..?”


“관장님 여기 우리 할머니 집이에요. 코로나 때문에 엄마가 일 나가셔서 할머니 집에 가 있으라고 해서 왔어요. 관장님 체육관 여기서 해요?”


아마도 이제 3학년 지섭이는 6살 때부터 체육관을 다니던 개구쟁이 녀석이었다. 에너지가 넘쳐서 친구들이랑 치고받고 싸움이 많아 엄마가 늘 용서를 구하며 빌었던 아이였다. 6살 먹은 놈이 항상 6시 넘어 체육관에 와서는 9시까지 엄마가 데려갈 때까지 체육관에서 살았다. 어린이집에서 제일 늦게 가는데 체육관을 다니면서 6시 전에 하원을 하니 체육관 봉고차가 어린이집 앞에 정차할 때마다 어린이집 선생이 속 시원하다는 미소로 태워주던 그 아이였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혼자 체육관에 와 누군가를 기다리다 오지 않는 아이들을 원망하며 돌아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관장님! 체육관이 어디예요? 여기서 해요?”


진수 씨는 얼른 뒤를 돌았다. 살갑게 인사해주던 관장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피곤에 쩔어 화가 난 50대 후반의 가장은 계속 불러대는 녀석을 모른척하며 뛰어갔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아이들의 노는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짜증을 내며 뒤척거릴 때마다 아내가 나가 떠드는 아이들을 내쫓았지만, 그때뿐이었고 코로나에 집에서 지친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 없이 하나가 나오면 우르르 나오기 일쑤였다. 숨어 놀며 동네를 떠들썩하게 하다가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를 좀 하다 다시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녀석들 통에 진수 씨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 여보! 아이들이 그렇게 시끄러운 것도 아닌데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예전에 생각해 봐요. 애들 체육관에서 얼마나 시끄러웠어요. 거기에 비하면..”


“뭐라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나 밤새 일해야 하는 사람이라구! 이제 대학생 된 놈 등록금 마련하려고 전전긍긍하며 이거라도 하는 내 모습 안 보여! 당신이야 편하게 집에 있으면서 떠드는 애들 이뻐 보이겠지! 당신도 나처럼 돈 한번 벌어보라고! 나가서 일해 보라고! ”


아내는 뒤도 안 돌아보고 밖을 나가버렸다.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았지만 진수 씨는 나 몰라라 이불을 싸매고 누워버렸다. 아이들의 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진수 씨는 전화기를 찾았다. 112를 누르며 민원전화를 걸 참이었다. 더 이상 못 참겠다. 이 녀석들 모두 ‘찍’ 소리도 못하게 할 것이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문 밖을 나가려고 했는데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다.

편의점 알바를 하고 돌아오는 딸내미를 보며 물어보려다 만다. 특성화고를 갔으면 취직이나 할 것이지 취업을 앞두고 대학 가고 싶다며 우겼던 딸은 결국 변변찮은 전문대 진학을 하고 등록금 값 아깝게 학교도 못 가고, 알바 가서 핸드폰으로 강의를 듣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같잖아 못마땅하다. 그런 눈길이 싫었는지 딸내미도 아빠를 스치듯 인사만 하고 지나간다.


“관장님이죠?”

지섭이가 대문을 가로막고 서 있는다. 쪼끄만 녀석이 눈빛이 매섭다.

“관장님이 우리 신고했죠? 마스크 끼고 노는데 뭐가 문제예요?”

“아니야 인마!, 내가 한 거 아니야!”

녀석의 당돌한 모습에 진수 씨는 당황한다.

“진짜 아니에요?”

“그래.. 인마!”

지섭이의 눈이 흔들렸다. 그러다 곧장

“관장님 어디 가요? 지금?”

“체육관 간다 이놈아!”

갑자기 지섭이의 눈빛이 변한다.

“그러면 저 관장님 체육관에 하루 종일 있어도 돼요? 엄마한테 말할게요. 할머니는 아무것도 몰라요. 핸드폰도 모르고, 컴퓨터도 모르고, 선생님은 자꾸 전화해서 뭘 해야 한다고 하고.. 저 체육관 다닐래요. 저랑 같이 가요!"

아이는 정자세로 고쳐 서서 큰 목소리로 동네가 떠나갈 듯 외쳤다.

"효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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