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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Nov 01. 2021

쪽팔림과 품격 사이

교사 독서 모임에서 순서가 되어 발제를 하기로 했다.      


‘아! 나는 인문학과 글쓰기를 오랫동안 하고 있는 교양인이니.... 실력 발휘 좀 해 볼까?’     

먼저 손을 들어 자청한 것은 아니어서 떠밀려하는 것처럼 보여도 멋지게 실력을 뽐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함께 나누기로 한 책은 어느 작은 섬에 있는 서점의 주인과 출판사 직원 간에 벌어지는 로맨스를, 꽤 다양한 관계 속에서 그린 작품이다. 이 책을 단숨에 읽으며, 하이틴 로맨스 같다는 생각을 정리하며, 또한 단숨에 발제문을 쓰기 시작한다.          

‘이 정도쯤이야...’      

말로 내뱉은 적은 없으나 머리와 가슴 한 구석에 마구마구 말풍선을 그려 놓으며 자만을 더한다. 적고 보니 줄거리를 요약한 것 밖에 없어 뭔가 한 방 ‘쨍’ 한 것이 없을까 머리를 굴려본다. 사랑이야기는 남녀 주인공들의 감정이 생기고 난 전후 변화가 가장 핵심 포인트이며 곁가지로 주변 인물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간단 요약하게 생각을 정리해주면 끝. 거기다 사랑을 이야기한 시나 철학을 조금 덧붙여 말하면 손색없는 발제문이 되리라 생각하고 기계적으로 요약과 설명을 절묘하게 범벅한다.      


드디어 발제문을 발표하며 토론하는 날이 왔다.      

공강 시간에 그리고 시간이 남아 주차장에서, 가지고 온 글을 소리 내어 읽어 본다. 혹시라도 구절구절 연결이 매끄럽지 않거나 흠집 날 만한 것이 있나 하고 말이다. 한두 번 눈으로 읽고 소리를 내어 보아야 그래도 덜 떨면서 부드럽게 넘어갈 것 같기도 해서 말이다.     

사람들이 모여 삼삼오오 자리를 잡아 앉고, 나는 발제문을 읽기 시작한다. 성숙한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에 바디우의 ‘사랑예찬’을 덧입혀 가며 한껏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나간다.     

발제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읽으며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끝마쳤건만 예상치 못한 침묵의 시간이 흐른다.     

통했다는 공감의 눈빛으로 따뜻해지는 순간이어야 하는데, 대학 새내기가 전공 강의실을 잘못 찾아온 거 아닌가 싶은 그런 느낌이랄까. 질문거리를 분명 적어놓았는데 순서대로라면 발제문 쓴 사람에 대해 칭찬을 하고 질문에 대한 답을 해나가면 되는데 쉽사리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다.   

 

“오늘은 발제자가 진행을 하실까요?”     


 회장이 갑자기 제안을 한다. 당황함을 감추고 침묵을 깨보려 같이 짧은 감상평을 나누자고 말했다. 조금 편안해진 분위기에서 말들을 돌아가며 이어간다.     

순서가 끝나자 다시 침묵. 이런 분위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저 발제자 선생님에게 질문이 있는데요? 바디우란 사람이 쓴 이 사랑예찬이라는 책에 정확히 무슨 내용이 있는 건가요? 우리가 읽기에 쉬운 책인가요?”     


질문을 한 선생님의 뒤로 여러 선생님의 질문이 이어진다. 질문에 답하면서 난감해진다. 여기저기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 답변하느라 본의 아니게 청문회 자리가 된 듯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      

집에 돌아오면서 너덜너덜한 정신을 챙긴다. 피식 웃음이, 어이없음에 한숨이 동시에 나오는 새로운 능력을 깨달으며 되돌아보기를 한다.      


발제문을 쓰면서 가졌던 자신감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인문학을 배우고, 삶에 접목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나의 그림자를 직면하기 위함인데 그것이 불쑥 열등감을 숨기고 자신감으로 둔갑시키는 마술을 부린 듯하다. 내 삶에 대해 전전긍긍하며 힘들어하면서, 남의 삶에 대해서는 단숨에 파악하여 글을 쓰고, 철학자들이 제시한 것을 근거로 여느 자기 계발서를 흉내 내며 영혼이 빠진 잘난 척을 했나 돌아본다.     


  품격과 쪽팔림. 매번 인간미를 갖추며 품격을 잃지 않는 선택을 하자고 마음먹건만, 때때로 인정을 받기 위한 몸부림을 신나게 하다 뒤늦게 인지하면 이렇듯 쪽팔림이 밀려온다.  뭔가 아쉽게 덜 찼고 동시에 비움이 필요한 이율배반적인 느낌. 그런 감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쪽팔림이 아닌 품격으로 진입하고 싶다. 부끄러움이 아닌 품격으로 나의 이야기가 편안하게 모두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면 더없이 좋을 일이다.  오늘도 글을 쓰고 비우면서 동시에 채우기 위한 마음공부를 더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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